귀국 비행기를 놓치고 다시 만난 샌프란시스코
얼마 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샌프란시스코 3박, 로스앤젤레스(LA) 4박으로 총 7박 9일 일정의 미국 여행이었다. 3박 4일의 샌프란시스코 일정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 (Gloden gate bridge)를 자전거로 넘어가기도 하고, 근교인 나파밸리에 방문해서 와이너리 투어도 했다. 4박 5일의 LA 일정 동안에는 필수 코스인 디즈니랜드에 방문해서 아기자기한 디즈니 캐릭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해변들도 방문해서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LA에서의 마지막 날, 영화 라라랜드에 나와서 유명해진 '그리피스 천문대'에 방문해서 황홀한 일몰을 보며 우리의 행복했던 여행을 자축하며 마무리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귀국을 향한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간다는 기분도 기분이지만, 귀국하자마자 감자탕에 소주 한 잔 할 생각이 제일 간절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여 인천으로 가는 일정이었고, 순조롭게 체크인을 하고 우리를 데려다 줄 첫 번째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첫 번째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에 40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의 탑승게이트가 굳게 닫혀버렸고, 결국 나는 비행기를 놓쳤다.
아니, 감자탕을 놓쳤다!
예상 가능한 전개겠지만, 항공사에 항의를 해봤자 다음 비행기를 타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뿐이었고, 우리는 항공사에서 위로(?)의 선물로 준 양치 세트와 공항 내 식사쿠폰 2장을 들고 돌아서야 했다. 다음 비행기 탑승까지는 약 12시간이 남아있었고, 우리는 다시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나가서 일명 '레이오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집에 가는 비행기, 아니 감자탕을 눈앞에서 놓쳤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라 정신줄을 부여잡기 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좋아'라는 말을 달고 사는 친구와 함께 한국으로 가던 마음 붙잡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나갔다!
다만샌 (다시 만난 샌프란시스코)의 첫 번째 일정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
지난 3박 4일간의 일정에서 보고 또 봤던 케이블카지만 직접 타보지는 못했었는데, 다만샌에서는 드디어 150년 역사를 가진 명물 케이블카에 앉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5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빨리 가지도, 승차감이 좋지도 않은 케이블카였지만, 그 안에 탄 각국의 관광객들의 표정은 모두 환한 설렘으로 가득 차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롬바드 거리에서 내렸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 등장한 것으로도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데, 이전 일정에서 일몰시간에 방문하는 바람에 예쁜 사진을 건지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었다. 최대한 편안한 비행기룩으로 갑작스럽게 가긴 했지만, 우리는 다만샌에서 햇빛이 예쁘게 비치는 롬바드 거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전 일정에서 시간이 없어서 밖에서 구경만 해야 했던 마켓을 방문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구경하고, 다양한 식료품들도 구경하면서 지난 일정에서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니 비행기를 놓친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진짜 진짜 마지막 일정으로, 예쁜 와인바에 들러 샴페인을 들었다. 샴페인을 들고 '짠'을 하고 있노라니, 7박 9일간의 즐거웠던 여행 모습들, 인천 가는 비행기를 놓치며 가슴 졸였던 일,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보냈던 선물 같은 하루가 머릿속에 스쳐가며 마음이 '짠'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이 날 건배했던 샴페인이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시는 마지막 샴페인이 되었고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며 그간의 일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7박 9일, 아니 8박 10일이 된 여행에서 인상 깊고 즐거웠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단언컨대 그중 최고는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샴페인을 건배한 이야기일 것이다.
여행의 끝자락에 만난 예상치 못한 큰 사건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말 그대로 멘털이 나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추가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다시 만난 샌프란시스코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환한 웃음을 짓는 수많은 관광객들도 있었고,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롬바드 거리도 있었고,
지역 주민들이 가득한 와인바에서 즐기는 좋은 샴페인, 와인들이 있었다.
이 소중한 것들이 모두 비행기를 놓친 대가라니, 아마도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행복한 "비행기를 놓친 여행자"였을 것이다. 집에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도 샴페인을 들었던 캘리포니아 마인드를 가슴 한편에 저장해 두고 현실이 나를 팍팍하게 할 때마다 슬쩍 꺼내서 이렇게 외치면서 짠을 해야지.
오히려 좋아!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