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를 읽으며]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가 학교에서 "아몬드"라는 책을 배우고 있길래 함께 읽기 시작했다.
아이 한쪽, 나 한쪽.
그렇게 교대로 한 스무 쪽쯤 읽으면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졸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 아이 한쪽, 나 두쪽씩 읽다가 마지막엔 내가 다 읽어주는 저녁 며칠이 지속되고 있다.
그냥 눈으로 읽는 것보다 이렇게 소리 내어 읽으면 아무래도 더 몰입하게 된다.
어제 읽은 내용 중 이런 장면이 나온다.
" -너였냐, 나 대신 아들 노릇 한 새끼가.
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어진 말도 곤이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골치 아플 줄 알아라. 뭐, 재미있을지도 모르고.
곤이가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진정한 시작이, 시작됐다."
(109쪽)
나는 여기서 털이 삐쭉 서는 듯했다....
여기서 잠깐 이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병리학적 상태(감정 인식 장애)**를 가진 소년이기에 엄마와 할머니는 윤재가 튀지 않는(한국 사회, 특히 학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삶을 살 수 있도록 매번 하나하나 가르치며 윤재를 키우지만, 크리스마스이브날 끔찍한 사고로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이때, 윤재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간 불안정하고 불행한 시절을 살아남기 위해 깡만 남아
'살인 빼고는 다 해 봤을' "곤이"의 등장.
그 뒤부터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어쨌든 곤이는 나를 괴롭히는 걸 새로운 취미로 삼은 듯했다.
상자를 열면 튀어나오는 인형처럼 불쑥불쑥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매점 앞에서 잠복해 있다가 나를 한 대 치기도 했고 복도 끝에 서 있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런 자잘한 계획이 성공할 때마다 곤이는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커다랗게 웃었고, 양옆에 서 있던 아이들도 곤이의 눈치를 보며 장단을 맞추듯 따라 웃었다.'
(110쪽)
그러나 뇌의 편도체(아미그달라, 즉 ‘아몬드’)가 작아서 공포, 분노, 슬픔 같은 기본적인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있는 윤재는 곤이에게 반응을 하지 않고,
결국 곤이는 결판을 선언한다.
"내일 점심 급식 후, 소각장 앞"
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분명히 예고했다. 그러니까 선택은 네가 해라. 맞기 싫으면 피해. 네가 안 나오면 겁나서 튄 걸로 치고 더 이상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그 대신 나온다면 각오 좀 하고."
근거 없는 내용이 크게 부풀려지고, 소문이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휩싸이고 그렇게 한 사람이 배제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아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전학 갔을까? 전학 가도 따라오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이어졌다.
내 생각에서 빠져나와 아이에게 한 번 물어봤다.
"너라면, 내일 소각장 앞으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아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먼저 우리 학교는 왕따가 없고요,
왕따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 피해자가 될 것 같지는 않고요.
만약, 그렇다면
엄마한테 이르고
선생님한테 이르고
교장 선생님한테 말할 거예요"
그 대답에서
아이의 세상이 아직은 평화로우며
행여나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주위의 어른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윤재는 그렇게 옆에서 단단히 지켜주어야 할 부모님과 가족이 아무도 없으니...
윤재가 혼자서 살아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다가와서 어른의 역할을 해 주는 한 분이 있으니 바로 "심 박사님" 이 분이 윤재의 삶에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나를 향한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판단에 우리가 너무 좌우되는 것은 아닐까?
윤재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삶이 더 간단해지는 것은 아닐까?
윤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널 피해야 되는데? 난 다니던 데로 다닐 거야. 거기 네가 없다면 볼 일이 없을 테고, 있다면 만나게 되겠지."
(112쪽)
뚜벅뚜벅 자기 길을 찾아가는 윤재를 응원한다.
윤재의 삶에 윤재를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따뜻한 많은 분들이 등장하여
멋진 청년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