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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May 20. 2021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서평: 심리부검


  내 직업은 특성상 자살 고위험군을 만날 확률이 꽤 높다. 매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려는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잠을 쪼개가며 애쓴다.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존재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다 보면, 그들의 감정에 내가 매몰되기도 하고 밀려오는 슬픔에 견딜 수가 없어질 때도 있다. 나 자신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면서 누굴 지켜낼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매일 나에게 전송되는 죽고 싶다는 메시지에 잠식되기 일보직전, 도망치듯 달려간 서가 구석에 있던 회색 표지에 그려진 파란 우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의 작가인 서종한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심리부검 자격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프로파일러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살 케이스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마흔 건이 넘는 자살 및 타살 케이스를 분석하고 관련된 이론을 찬찬히 풀어나가는 작가의 문체는 담담하지만 그래서 더 먹먹하게 다가온다. 심리상태에 따라 자살하는 방법도, 자살하는 장소도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 유서의 분량과 문장 구조가 나타내는 죽는 순간의 마음 상태, 자살과 타살을 구별할 수 있는 유서 감정법,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타살성 자살 등에 대해 다룬다.


  p.65
 필자가 실시한 심리부검을 기준으로, 자살자 200명 중 83%는 정신 질환 경험을 했으나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병원 가기를 꺼려했다. 전문가들은 "한 번의 자살 시도도 심각한 수준의 질환이므로 첫 시도 당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자살 시도가 있었던 40명 가운데 정신 건강 의학과에서 충분한 진료를 받은 사람은 6명(15%)에 불과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정신병자란 소리는 못 듣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자살 유가족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도 있다. 허나 위의 예시처럼 제대로 된 치료나 도움은 받지도 못하고 주변인들로 인해 오히려 등 떠밀리듯 세상과 단절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가까운 존재로부터 받는 지독한 상실감과 고립감은 인간을 무력하고 버틸 수 없게 만든다.


p.130
 마음의 상처엔 내성이 없다.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생생할 정도로 같다. 마치 내성 없는 전기 고문과 같다. .....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연결끈이 끊어지는 순간 몰려오는 고독과 외로움은 삶의 모든 이유를 잠식해 버린다.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것은 아무리 잦아도 그 아픔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새로운 고통이 스며들면 수면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도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몸과 마음을 반으로 접어 닻이라도 매어놓은 듯하다. ‘죽고 싶다’라기보다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가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6.9명으로 OECD 국가 중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0만 명당 수치로 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좀 더 쉽게 보자면 한 달에 1,200명 정도 자살을 한다는 것이고 하루에 40명씩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35분에 한 명씩 대한민국의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삶을 놓아버리고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에 한 번 겪을만한 어려운 일들을 폭풍처럼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힘든 일을 겪은 누군가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섬세하게 관찰하고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p.138
  한쪽 편엔 발자국들이 유난히 많이 찍혀 있었다. 그가 신었던 신발 문양과 일치했다. 절벽 위에서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주저하고 고민했을 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주저, 머뭇거림, 그리고 고뇌, 자살하기 전에 죽음을 결심하고 그 죽음 바로 앞에 서 있는 그들은 공통적으로 무수한 '심리적 주저흔'을 갖는다. 뛰어내릴지 말지, 두려움이 앞서면 포기하고 내려온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올라가서 뛰어내릴지 말지 고민한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산책을 나선다. 타박타박 걷다 보면 같은 장소에 도착한다. 두려움이 앞서 물끄러미 물그림자만 바라보다 돌아온다. 그다음 날은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몸을 구부리고, 그다음 날은 발 끝을 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조금 축축해진 눈가를 문질렀다. 내가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남은 시간은 35분.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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