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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Dec 25. 2022

노릇의 무게

노릇


1. 그 직업,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맡은 바 구실

3. 일의 됨됨이나 형편



3주 전 저녁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늘 자식이 걱정이고 자식이 우선우리 엄마. 그렇게 딸하나 아들 하나 평생 죽을 둥 살 둥으로 농사지어놨더니만, 내년 마흔둘 성적표 받아놓은 딸하나는 열이면 칠을 그런 엄마를 발신인으로 만드는 무심한 딸이 되었다.


"집 내놓은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뭐, 그냥 그렇지 뭐."

"에이~그래. 그게 지금 되겠냐 골치 아픈데 그냥 살아. 나중에 중학교 입학할 때 가던지 해"

"..."

"○○는 괜찮아?"

"응 이제 괜찮지~비염이라 관리 잘해주는 수밖에 없어."

...

"그나저나 연말에 애들이랑 봐야지?"

"으응 봐야지. 엄마아빠는 언제가 좋으셔?"

"일단 네가 연락 좀 해서 맞춰봐라."

"응~ 시댁도 보기로 해서, 나도 형님연락 주시기로 했는데, 기다리고 있어. 동생한테 연락해 볼게요."


 엄마가 전화한 이유. 올 연말 아들 딸 내외, 손주와의 연말만남은 언제 할 건지가 궁금했던 거다. 늘 엄마는 나보다 반 발짝씩 먼저 묻고 먼저 연락을 한다. 나도 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챙겨서 연락하고 해야 하는데 늘 늦는다. 반면 시부모님이 안 계신 시댁은 집안 제사나 식구들 생일 축하모임 등등을 손윗형님과 의논을 하는데 거기선 늘 내가 먼저 여쭙고 챙기고 날짜를 잡는다. 한 번쯤은 형님이 먼저 연락 주실 만도 한데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하시지를 않는다.


 삼십 대를 지나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니 늘어나는 건 뱃살과 처진 볼살뿐만이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그 무게가 가벼워 느끼지 못했던 그 '노릇'의 무게가 요즘 들어 부쩍 느껴진다. 시댁과 친정사이에서 맏딸과 동서, 혹은 형님, 올케, 제수씨, 작은엄마의 역할을 똑 부러지고 싹싹하게 하지도 못하는 내가 그 노릇의 무게를 생각한다는 말은 어패가 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딸, 누나노릇만 하면 되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차오를 때마다, 어느 순간 죄책감이 든다. 넌 나이를 먹을 자격이 없다. 하고.


 그럴 때마다 이 단어가 불현듯 스쳤다. 이 '노릇'이라는 말.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3가지의 뜻이 있었다. 사전까지 찾아보게 만든 이유는 노릇의 두 번째 뜻 '맡은 바 구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에너지가 내 안으로 모여야 충전이 되는 나는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에도 중간중간에 혼자 있고 싶음을 느낄 때가 많았다. 내 가족을 이룬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 공간과 내 시간을 갖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책임감이 없거나 인정머리가 없거나, 사람이 싫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시간 하나하나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타고나기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 에너지를 그저 내 안에서 채워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 나이가 들고, 역할이 분화되어 책임질게 많아지니 에너지를 분산시켜야 가능한 그 노릇의 무게가 가끔은 버겁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이고 철이 없는 걸까. 연말이나 명절이 되면 그 노릇의 무게가 더욱 견뎌야 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한편, 그 노릇은 일방적일 수 없다. 적절한 노릇의 이유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없다면 노릇도 없다. 하지만 그 노릇도 어느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님을 안다. 엄마가 나에게 연말에 언제 볼 건지 궁금해 나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어쩌면 많이 고민하다 휴대폰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형님도 괜히 시댁일로 부담주기 싫어서 늘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시는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가장 어려운 게 부모노릇, 더 나아가 인생의 숙제는 어른노릇 아닌가. 각자의 위치에서 짊어지는 노릇의 무게와 색깔은 다 다르다. 내가 그 노릇의 주체일 수만도 대상일 수만도 없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건 욕심이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이젠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릇의 무게가 느껴질 때의 그 이유를 곱씹어보면 내가 또 욕심을 부렸구나 싶다. 그리고는 그 노릇의 가짓수와 나이만큼 점점 더 무거워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 노릇이 버겁다고 하는 나를 꾸짖고 설득시킬만한 이유. 그만큼 나이를 잘 먹고 있고, 잘 살아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라는 생각.


 12월은 안부를 전하기도, 만남을 청하기도 하며 그 관계를 확인하는 달이다. 자주 보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한 해를 바삐 살아가다 혹은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 잊고 지냈던 친구 또는 선후배, 은사님에게, 아니면 먼 친척에게 전화도 하고 카톡도 하게 되는 그런 달이다. 누군가는 기꺼이 마음을 담아, 누군가는 '노릇'의 무게를 견디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노릇의 무게가 버겁다면 견디지 말고, 간직하고 돌보는 마음으로 그 노릇을 하는 자신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노릇을 하는 서로가 있어 올 겨울이 마음만은 따뜻한 온도로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갈 수 있음을 알아주고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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