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그리고 미국 생활 10년 차의 새로운 시작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올해는 앞날을 딱히 계획하지도 않고 (계획할 수도 없었던) 건너온 미국에서 10년을 꽉 채운 해였다. 동에서 서로, 또 서에서 동으로 그렇게 4번을 주를 옮기고 5번 집을 옮겨 비로소 정착한 해 이기도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가 일 년을 넘게 온 세상을 덮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날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3년 만에 아들 집에 방문하신 시부모님과 살뜰한 시간도 보냈고 틈틈이 아이들과 여행도 다니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그 아름다운 봄날에 나는 간절히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지금이야 말로 막연했던 마음속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마음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일하는 것이 좋았다. 돈을 버는 일이든 아니든 뼛속까지 성과 주의자인 엔티제의 성격 탓인 것인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미국에서 딱히 산후조리라 할 것도 없이 두 번의 출산을 해내고(!) 내일을 알지 못하는 늘 불안한 날들 속에 세 아이를 기를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수시로 시작하고 중도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딱히 이룬 것은 없지만 ‘열심히 산 날들’의 흔적들만 간직한 채 마흔을 맞이했다.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 속에 하루하루 후회 없이 / 열심히 / 그리고 즐겁게 / 살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삶과 이방인의 삶에 적응하는데 충분했던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다음 단계의 삶을 살아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한 다는 생각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저 사랑스럽고 건강한 세 아이와 성실한 내 편, 남편과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나는 내 삶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만드신 분이 유학을 꿈꾸었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 때의 내 탄식과 좌절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라고. 그래서 이 선물을 더 적극적으로 감사히 누려야 하는데 이런 저런 상황과 핑계들로 계속 미루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미국 산지 1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인 영어가 그 증거라고나 할까.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래도 가을학기부터 학교로 아이들이 돌아가면 온전히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10년 만에 처음 주어지게 되니 더 이상은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며 마음먹은 것은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영어권 회사에 취업하는 것 (요즘은 리모트로 일하기에 꼭 미국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 미국에서 일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한국 회사 거나, 한국분이 사장님으로 계신 곳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미국 사회 안으로 들어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굳히는 시간이었다. (사장님 나빠요.라고 말하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심정... 내가 너무 잘 안다..)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서 일하는 게 뭐 얼마나 특별한가 하겠지만. 이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바로 나 말이다. 살아도 살아도 언어의 벽과 문화의 벽을 넘어서는 게 참 쉽지가 않았다. 아니 살 수록 더 어렵게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들은 풍월도 있어서 노력한다고 해도 미국 사회 안에 100% 밍글이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국말로 하는 사회생활도 힘든데 영어로 하는 사회생활이 보통 힘들까..
그런데 나의 성격이 참으로 이상한 것인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인지 (하늘 아버지!), 이런 어려움을 만나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을 너무 사랑한다. 내 숨겨져 있던 부족함과 수치심들이 도전 앞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동시에 부족함을 넘어설 실력과 수치심을 내어놓을 용기가 채워지는 기적이 늘 함께 하기 때문에 내 앞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는 길이 있다면 설렘으로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가보지 않은 길, 전혀 자신할 수 없는 일.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었던 영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일을 만나게 될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그리고 그 벽을 넘어서고 나면 또 어떠한 세상을 만나게 될지 모른 채 나 혼자만 아는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했다.
그냥 마음만 먹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무 아이디어도 없고 그저 결심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기다린 것처럼 하나씩 상황들이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