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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경 Oct 17. 2021

취업하려고 연극을 시작했다고요? - Part 2

배우로 만들어져 가는 시간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고 모든 캐스트와 스테프가 모여 킥오프 미팅을 가졌다. 영화에서만 보던 층고가 높은 빨간 벽돌의 연습실에  70대 할아버지부터 파릇파릇한 새내기 대학생까지 서른 명이 넘는 온갖 인종과 종교의 사람들이 모였다. 첫날 우리가 모여서 한일은


게임이었다.


디렉터인 마이클이 몇 가지의 선택지를 주면 자신에게 해당되는 곳으로 가서 왜 자신의 선택이 최고인지 같은 그룹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다른 그룹과 디베이팅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한 문제가 오늘 연습시간에 먼저 온 사람, 정시에 온 사람, 늦게 온 사람, 언제 왔는지 모르는 사람 별로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날 늦게 도착한 나는 단원들 중 가장 어린 친구들과 같은 그룹을 하게 되었다. 다들 늦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그 그룹에 있는 것에 당당한지. 나는 단지 완벽함을 추구할 뿐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에 환호하며 엉덩이 춤을 추는 친구들 덕분에 나도 같이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거 재미있네? 하며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갔다.



늘 연습 마치고 건너가던 피츠버그 브리지


세 시간 넘게 대본 리딩까지 이어진 연습은 아마도 내가 미국에 와서 미국 사람들과 가장 오래 있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긴장을 했던 탓인지 피곤이 막 몰려오는데 노을 지는 피츠버그의 골든 브릿지를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퇴근길의 기분. 정말 오랫동안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구나. 



저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와 주신 작가님


내가 맡은 배역은, 코러스였다. 처음에는 코러스가 노래 부르는 사람 그 코러스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엑스트라’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딱히 내 대사도 없고 극 중 의자를 나르거나 수업장면에 자리를 채우고 있는 그런 역할이었다. 이 정도의 역할만이라도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 (용돈까지 벌면서!) 이미 충분했다.


그런데 극작가님이 코러스 배우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미팅을 잡는 것이 아닌가. 무려 극작가님이.. 나와 만나주신다고? 너무 떨리는 마음으로 꽃단장까지 하고 줌 미팅을 위해 자리에 앉았다. (영어 말하기 시험 보는 느낌… 이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다음 작가인 제임스가 물었다.


“넌 뭘 하고 싶니?”


너무 뜻밖의 질문이었다. 고작 코러스인 나한테 뭐가.. 하고 싶냐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도 된다는 거야? 당황한 멘탈을 얼른 수습하고는 대답했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일단 던지고 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이어갔다.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내가 생각하는 피츠버그 사람들은 어떤지. 나에게 있어 이 연극은 어떠한 의미인지 최대한 내 안에 저장되어 있는 단어들을 꺼내어가며 내 생각들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정된 대본에는 작가님께서 써주신 Charity 라는 이름의 나의 이야기 한 장이 더해져 있었다. 



우리가 배우를 만듭니다.


상의중인 연기, 발성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


연습은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시간표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부분 낮에는 자신의 일이 있는 배우들의 스케줄을 고려해 연습은 평일 밤과 주말 낮에 이루어졌다. 약 한 달 반 정도는 시간을 쪼개어 배우마다 또는 씬마다 연습시간을 나누었다. 이번 연극은 특성상 70%의 전문 배우와 30%의 비전문 배우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기를 잘 못하는데 연극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였다. 연기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을 마음다해 전달 할 수 있다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연극을 보며 배웠다. 연출가인 마이클과 연기 선생님은 특히 이런 비전문 배우들의 연습시간에 늘 함께하며 연기자들 스스로 자신의 대사에 진정성을 더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다. 



음향, 조명, 무대 스태프들까지 모두 모인 리허설


연습은 힘들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엄마는 잠시 내려놓고 (몇 줄 안 되는 대사지만) 배우의 이름을 입고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보며 출퇴근하는 기분은 매 번이 꿈같았다. 그렇게 한 달반 정도의 개별 연기 연습이 끝나고 연극할 극장에 무대가 세워지고 조명과 입혀지자 그동안 꿈같던 시간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무대는 너무나 넓었고 객석은 너무나 많았다. 


각 장면들도 중요했지만 막이 오르기 전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한 것은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는 트랜지션 부분이었다. 동선이 꼬이지 않고 매끄럽게 음악과 조명이 이어지도록 수십 번 등장과 퇴장을 반복했다. 연습할 당시에는 왜 이렇게 까지 이 부분에 신경을 쓸까 싶었는데 막상 연극이 시작되고 보니 5~10초 정도의 그 순간, 긴장과 기대를 다음 장면까지 이어가 최대한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이어가는 것은 전체 연극의 감동을 높이는 히든 포인트였던 것이다.


연극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하는 무대 매니저, 자랑스러운 한국인 지나!


배우들에게 모든 공이 오롯이 들어가도록 보이지 않는 부분을 채우는 스태프들의 노력들.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과 맡닿아 있어서 일까. 그들의 모습이 내게 참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첫 무대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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