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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글장 Feb 27. 2024

13개월 차이 연년생을 낳고 후회?




너희 둘을 키워내는 건 도무지..


내 나이 30살에 13개월 차이 연년생 형제를 둘을 키우는, 속칭 애 둘 맘이 되었다.

"감히"라는 단어를 써도 과언이 아닐 테지.

내 욕심에, 내 이기심에 뱃속 아이를 품으면 심리안정이 될 듯하여 빠르게 둘째를 임신했으니까.




그러나 하나와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아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고되고 힘들었다.

첫째를 어화둥둥 내 새끼로 키워놓아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둘째도 그렇게 키울 줄 알았는데

몸이 힘드니 대충 하게 되고 사랑도 반밖에 주지 못했다.

첫정이 깊어 그랬을까? 태어난 둘째에겐 애정이 덜 했다. 아니지 조금 미운 모습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어 둘째의 신생아시절 기억이 별로 없기도 하고,

뱃속에서 품었을 때도 첫째의 육아 때문에 태교 한 번을 못해줬다. 참 안쓰럽고 미안하다.




가시 박힌 내 마음은 온전치 못한 감정덩어리가 되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칠판을 긁는 손톱소리처럼

날카롭게만 들렸고, 늘 정돈되지 못한 집안 꼴이 나를 더 악랄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못했고 눈을 흘겼다. 그날의 감정을 수거하지 못해 늘 썩어 악취가 풍겼다.

그때의 나는 참 나쁜 엄마였다. 지금도 그리 썩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지만..



카메라 달린 네모세상 속은 화려함과 차분한 그 자체


한동안 sns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집 보면 늘 깨끗하고 깔끔하고 심지어 인테리어도 너무 곱고 예뻤다.

물론 엄마들의 행색은 더더욱 그러했다. 예쁜 잠옷차림에 수수한 얼굴. 밝은 미소까지.


그에 반해 나는. 샤워는 고사하고 세수도 사치였다. 어두운 낯빛에 젖이 흘러 자국이 난

낡아빠진 수유복차림.. 이러니 비교가 안될 수 있겠나?

물론 네모세상 속은 누구든 연출된 장면, 좋은 모습만 보일 테지만,

내 자존감이 바닥치고 있을 때라 다 꼴사납게만 보였고 싫었다. 시기질투 뭐 그런 기분이겠지?


한 손엔 둘째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막 걷기 시작한 첫째를 잡고 있는 내 꼴을 보고 있자니

슬픔이 아닌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럴 줄 몰랐니, 다 네가 자처한 일이잖아' 하며 속으로 분을 삭였다.


그래.. 타의적 선택으로 인해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겠나. 다 부족한 내 탓인 것을.


또 그때의 나는 무슨 욕심이었는지 첫째를 보육기관에 맡기지 않았었다. 이상한 신념?으로

두 돌까지는 데리고 있고 싶어 가정보육했다. 이 모든 일은 남편의 여러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마워 여보....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남편 덕이다.





깜깜한 방에 혼자 갇힌 기분, 산후 우울증의 시작


우울증은 날로 심해지고, 공황발작도 자주 찾아왔었다. 바로 연달아 낳는 바람에 근 몇 년간

잠이 늘 부족했고, 식사도 엉망이었다. 몸과 마음은 매일 피폐해졌다. 아이를 돌보는 삶

엄마로 사는 삶이 너무나 감사하지만,


몹시 지루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혼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깜깜하기까지 했다. 미래가 안 보였달까.


무소식이 이노무 자식!!


연년생 형제의 육아는 매일 퀘스트를 깨듯 미션이 주어졌다. 그렇게 하나씩 수행해 내고 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약간은 레벨 업 되어있고, 조금 편해진 육아관으로 만렙을 꿈꾸게 된다.



인고의 시간, 둘째 출산 1년 후


첫째의 25개월 무렵 드디어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그간 이 작고 여린 둘째 아이에게 너무 무신경했던 나를 반성하며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온 사랑과 정성을 들여 키워냈다. 늘 이리저리 치이던 둘째도 그걸 아는지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둘이 있을 땐 엄청난 애교쟁이로 변한다. 늘 자기를 봐달라며 울상 짓던 아니 통곡하던 아이가

엄마의 편안한 미소를 보고 눈을 찡긋하며 웃기도 하고 얼굴을 비비며 스킨십도 곧잘 했다.

그렇게 우리는 형의 부재로 인해 더욱 가까워졌고 애틋해졌다.





감정에 따라 좁고 넓어지는 여유의 통


내적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을 보는 눈도, 말의 톤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문틈도 꽤나 많이 열렸다.

가끔은 엄마도 이런 자유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혼자는 아니었지만, 한 사람이 빠짐으로 인해 바뀌었다.


앞에서 하나와 둘은 천지차이라 했던가? 둘과 하나는 더 큰 차이다. 첫째만 있었을 땐 몰랐던

여유로움.. 씻고, 먹고, 심지어 같이 산책도 나갔다. 손 한쪽이 비어있다는 건 참 자유로운 거구나.


삶을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외려 내가 더 배운다. 육아는 비단 부모만의 몫이 아닌 것 같다.

이토록 보잘것없는 나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 그저 사랑으로 돌봐주는 내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 부끄럽다. 그들의 사랑을 먹은 덕에 나는 내일 또 자라나 있겠지?



어쨌든, 나는 감정적이고 화가 많고 예민한 엄마입니다.


나는 아이들이 불편함을 고하고자 토해내는 울음을 시끄럽다며 귀를 막았었다. 물론 지금도 때때로 그렇다.

나도 사람인지라 순간적으로 화도 내고 짜증도 낸다. 언성을 높이는 일도 허다하다.

근데, 육아가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어찌 매일 온화하고 조곤조곤하게 타이르면서 말하겠나.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법. 모두 다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 나는 왜 이러나 자책 말았으면 한다.



 ‘내가 어느 파트에서 화가 이토록 나는 걸까, 조절이 안되는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알고 화내는 것과 모르고 윽박지는 것은 다르기 때문.

내 한도가 이만큼 인걸 알고 곧 터지겠구나 인지하고 있으면 100의 분노에서 단 몇십 프로는 빠지는

경험을 했다.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땐 화장실에 가손을 씻는다. 그러면 잠시 풀리더라.




연년생육아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기에 솔직히 추천하지 않는다 :-(

물론 엄마의 여유로운 성향과 느긋함이 있다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조급한 마음과 예민함을 겸비했다면 신중하게 선택하길 진정으로 권한다.


모두 엄마의 정신건강에 직결되기 때문에...

부디 후회 없는 계획을 찾으시길 바라며...

아무튼-

하나든 둘이든 부모는 모두 대단하고 경의롭다.

세상 모든 부모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알고 물은 건너 보아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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