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동현관문을 나서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지저귀는 새소리가 정겹다. 벌써 봄이 왔는지 햇살도 따듯하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책과 노트가 들어있어 가방은 무거웠지만 글쓰기 모임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다.
모임 시간에 늦지 않으려 몇 개 안 남은 신호등의 초록불에 전력질주해 본다. 그렇다. 나는 열정적이다. 아니 좀 과하다.
요즘 유행처럼 자주 언급되는 도파민 중독자다. Netflix로 미드를 볼 때는 하나에 40분, 한 시즌에 24개짜리 드라마를 시즌6까지 날밤을 세워가며 며칠 만에 정주행 했다.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궁금증을 던져주는 충격적인 엔딩에 낚였다. 주경야독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미드 보고 결국 눈은 악성 안구건조증이 되어버렸다. 대학생 아들은 거실에서 자다 깨다 하며 좀비처럼 누워있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엄마, 왜 이러세요?' 라며 사춘기 자녀 대하듯 근심스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운동을 해도 승부욕인지 인정 욕구인지 과하게 몰두하다가 어깨를 다치고 무릎이 아프고 승모근이 뭉치고 심할 때는 응급실도 가고 그랬다.
정말 문제적 인간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끊임없는 외부의 자극에 시달리는 것과는 달리 글쓰기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 것 같지만 막상 글을 쓰다 보면 새로운 나를 만난다.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고민이 정리되고 삶이 명료해진다. 따듯한 레몬차를 마시며 가지런한 줄공책에 부지런히 펜을 움직이면 신기하게도 편안함과 충만함을 느낀다. 글을 쓸 때도 도파민이 나올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글쓰기의 묘한 매력에 중독되었지만 글을 쓸수록 더 정리가 되고 침착해진다. 도파민은 아니지만 분명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같은 좋은 호르몬이 나오지 싶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모임 숙제 글을 쓰는 게 일상이다. 자연스럽게 일찍
자게 되어 넷플릭스도 거의 안 본다. 모임에서 발표한 글을 가끔씩 가족 톡방에 올려본다.
"음. 괜찮은데?"
남편이 미소 지으며 격려해 준다.
"문체가 맑고 진솔해서 좋아요 "스물네 살, 첫째가 답글을 달아준다.
"글이 너무 좋아요."
스물한 살, 둘째가 칭찬해 준다.
뭔가 근사한 엄마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혼자라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쓰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글쓰기 동아리의 힘이다. 작년 9월에 시작한 주 1회 글쓰기 모임이 이제 다음 주면 3월이니 벌써 6개월째다. 바쁘다는 핑계로 성실히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의 6개월은 좀 더 열심히 써보려 한다. 그래서 올 연말은 좀 더 뿌듯할 예정이다.
글쓰기 모임 장소는 넓고 조용한 우리 동네의 카페다. 반가운 마음에 카페의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