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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Jul 30. 2023

요즘 이혼가정은 흠도 아니야

아마도?

어릴 때, ‘요즘 이혼가정은 흠도 아니야’래서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별로 믿음은 안 갔지만 그렇게 믿으면 기분이 좀 나았다.


 내가 사라졌을 적에 모두 괌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저씨는 괌에 가서 내 생각을 잊지 않았나보다. 나에게 되게 비싸 보이는 나비 모양 목걸이를 선물했다. 목에 거는 법을 몰라서 헤매고 있으니 레스토랑 직원이 걸어줬다. 아저씨는 시종 미안한 표정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비싼 걸 사주면서 왜 저런 얼굴을 하지.


 파스타를 다 먹고, 강변에서 헤어졌다.


 “정말로 아빠였으면 좋았을 건데요.”


 헤어지기 직전에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이어 아주 작게 들려온 아, 소리가 웃는 거 같기도 하고 글썽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다리 밑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아저씨는 더욱 미안한 표정이었을 것 같았다.


 집에 와서 문자를 보냈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집을 상당히 많이 옮겨 다녔다. 어머니 쪽, 아버지 쪽, 조부모 댁, 삼촌 네, 자취도 하고. 십대의 나는 거짓말로도 행복하지 않았다.


 어딘가의 집에 들어가 다시 살게 된 지 수 개월만에, 곧 다시 어딘가 다른 집에 들어가서 살기도 하고.


 집을 옮길 때 나는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느꼈다. 이토록 뼈저리게 느꼈는데 세상의 법칙이 아닐 리 없다는 순진한 생각을 자주 했다.


 사랑은 변한다. 드라마에서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고 말하면, 내 안에서 그 사랑이란 단어는 확장되었다. ‘가족조차도?’ 자문해보면, 적어도 그 개념이 아저씨, 그러니까 새아버지까지는 닿을 것 같았다. 그 뒤로 난 영원이나 사랑 같은 것의 정의, 개념 같은 걸 생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순수한 사랑이면 영원할까? 아무런 조건 없는 가족적 사랑이라면.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항상 어떤 맥락 속에 놓여 있고, 조건을 무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다만 어떤 조건을 보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건 순수성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무리로서. 어쩌면, 온 세상이 남의 아이라 불러도 내가 ‘아빠’ 하고 부르는 순간 그 어떤 해바라기보다 만개한 그 미소 같은 것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은연 중에 우릴, 사랑할 가치가 두 동강 난 반쪽자리 집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순수한 사랑 같은 건 외부에서나 갈구할 것으로 여겼나보다. 나는 우리 ‘이혼가정’을 믿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난 항상 어딘가에 목을 길게 내빼어 순수한 사랑을 바라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러는데, 이혼가정은 흠이 아니라고 했다. 요즘 들어 이혼가정은 더욱 흠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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