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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Oct 19. 2024

향과 아우라

         

  허브 향. 귀 뒤로 머리를 쓸어넘긴다. 치약 향보다는 달고 향수 향보다는 무던한 그런 향기가 난다. 나는 향기가 나는 곳으로 가며 그 애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는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얼굴을 볼 수 있다. 푹 눌러 쓴 보라색 모자 아래 흰 피부, 눈이 크고 옆으로 길게 트여 있다. 콧볼이 작고 동그랗다. 아랫입술이 매끄럽고, 턱선이 도톰하다. 귀여운 인상. 호명출석이 아니라 이름은 모른다. 전자출결 사이트에서 수강생 목록을 뒤져보면 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찾아본 적은 없다.

  늘 혼자 있는 사람. 나도 남에게 저렇게 처연해 보일까.

  키보드를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 손톱이 바싹 깎인 가느다란 손가락, 약지에 은색 반지를 두르고 있다. 나긋한 소리에 가슴이 느릿해진다. 강의는 한없이 노곤해진다.

  강의가 끝나면, 빠르게 정리하고 나온다. 나오며, 뒤에서 짐 정리를 하는 그 애를 흘긋댄다. 흡연구역으로 오겠지. 나는 의식하지 않은 체하며 옆에서 고개를 돌리고선 급히 담배를 피우겠지. 그리고 도망치듯 다음 강의실로 갈 것이다. 알고 싶은데 피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그 애는 레종 프렌치블랙을 피웠다. 맨 처음에는 레종 요고였다. 오늘도 레종일까. 담배를 피우는데 왜 몸에서 허브 향이 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흡연구역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담배가 절반 이상 타고 있는데 아직 혼자였다. 

  원래는 담배를 안 피웠다. 지금 학교 편입을 준비하면서 배웠다. 자취방에서 일 년 동안 책과 동거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집에만 있는 건 곤욕이었지만 학교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학점이 필요했다. 학교에서는 늘상 애들 눈치를 보다가 화장실에 가 토악질을 하곤 했다. 

  그랬다. 아직 떠올리면 손 마디마디가 살살 떨려 왔다. 바닥애 살살 재를 떨다가, 꽃 위에 떨어져 손을 멈췄다.

  꽃의 이름 같은 건 잘 몰랐다. 손톱 반절 만한 작은 보라색 꽃.

  꽃잎은 작은데 줄기는 길었다. 어릴 적 치던 장난처럼 꺾어서 손가락에 둘러봤다. 조금 웃었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줄기를 풀어내고 곧 꽃을 벤치에 돌려놓았다. 

  담배를 필터 가까이 피워 내고 있는데 아직 혼자였다. 한 대 더 꺼낼까 고민하다, 그냥 꽁초를 버렸다. 여름 태양이 뜨꺼웠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뒤에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보라색 캡모자와 묶은 긴 머리, 눈썹을 찌푸린 예쁜 얼굴. 눈이 마주쳤다. 그 애가 벽 뒤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애가 먼저 꾸벅 인사했다. 나도 꾸벅 인사했다.

  그 애가 나를 봤다. 잠깐 보지 않고 꽤 길게 봤다. 나를 보는 눈, 평소처럼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눈. 나는 시선을 내렸다. 낯이 화끈댔다. 왜 나를 길게, 저렇게 보는 걸까.

  시선을 내리면, 레종 블랙을 쥐고 있는 왼손의 은색 반지가, 태양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아주 바쁜 사람처럼, 가방을 꼭 쥐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다음 강의실로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조금 달렸다. 달리며 생각했다. 왜 매번 담배를 바꿀까. 왜 그렇게 보셨어요. 물어볼까. 이상하잖아. 달렸다. 가슴이 함께 달린다. 물어보지 않겠지만. 꼭 물어본 것처럼 빨리 달렸다.    


           

  네 번째 강의를 듣는다.

  아우라란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에서, 오리지널리티에서 나오는 것. 설명 한 자 한 자를 반듯이 필기해 가며 책상에 고개를 처박는다. 문득 고개를 들면, 오늘도 대각선 앞자리의 여학생. 노트북, 그리고 흰 손가락들. 분주히 흘러가는 수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다시 고개를 처박다가, 문득 다시 올려 봤다. 약지에 은색 반지가 없다. 탁탁 움직이는 손과 꾹 다문 고요한 입술.

  이제 저 애의 이름을 안다.

  이지민. 오늘 수업에 지각해서 호명으로 출석했다. 마스크를 쓰고 왔다. 긴팔 티를 입고, 긴 머리를 풀고 있다. 얼굴에 맺힌 땀을 간혹 손으로 쓸어내린다. 한여름인데. 더울 텐데. 왜일까.

  그 이유는 떠오르지 않고, 그 보라색 모자에 보라색 꽃이 떠오르고 만다. 손가락에 둘러보며 잠깐 웃었던 것 같은데. 다시 고개를 폭 처박고 한참을 필기만 한다. 슥슥 적어 나가다가, 문득 향이 나는 곳에 홀려 고개를 들면, 귀 뒤로 머리를 쓸어넘기는 지민이 보인다.

  보인다. 그 목덜미 위로, 푸르게 물든 멍자국. 나는 지금 내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쓰던 펜을 두고 가만히 넋을 놓고 있다. 그 애는 쓸어넘기던 머리를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다. 잔잔한 허브 향.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생각한다. 교수님 설명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 이 순간을 설명해줄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이지민의 하얀 손가락과 빈 약지, 긴 머리 아래 숨겨진 푸른 멍과, 그 사이 여실히 풍겨 나오는 진한 허브향에 대해 설명해줄, 전지한 존재가. 



         

  강의가 끝나면 어김없이 흡연구역. 어김없이 그 애도 있다.

  육성으로 인사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을 텄다. 같은 수업 들으시죠? 웃으며 통성명을 했고 맞담배를 태웠다. 철학과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자기는 시각디자인이고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화 했다. 교수님 수업 스타일에 대한 호감도, 학식 맛이나 학칙에 대한 불평불만 같은 것들.

  겨우 그런 것들만 얘기하고 있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랜 시간 홀로 방에 있어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의 감도와 깊이가 있다. 거울을 보듯 감각으로 알 수 있는 표정의 미세한 움직임이 있다.

  서로 비슷한 속도로 담배를 빨다가 뱉다가 또 말하다가 했다. 지민이는 간간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빛이 서린 눈망울. 또 조금은 흔들리는 눈동자. 나도, 어쩌면 저런 눈을 하고 있을까. 실은, 나 여기서 쭉 외로웠다고 터뜨리고 싶은 눈 같은 것.

  마스크를 내린 얼굴의 입술이 터져 있었다. 입꼬리만 동그랗게 쥐어 터진 상처였다. 터진 입술로 필터를 빨아들이며, 가끔 표정을 찡그릴 때면 나까지 통각을 느낄 것처럼 아파 보였다. 나는 괜찮냐고 묻지 못했다. 괜찮다고 듣는 일도 없었다.

  여름 해와 뒷뜰 흡연구역의 벤치 위. 내 이마에도 땀이 잔뜩 맺히는데, 저 긴 머리 아래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지간히 더웠는지, 결국 머리 끈을 꺼내 머리를 묶었다. 목덜미에, 쇄골에 비치는 푸른 멍 자국들. 묶으며 슬쩍 눈치를 보는 얼굴. 왜 지금은 한여름일까.

  나는 연기를 내뱉으며 물었다.

  "왜 철학을 전공 하는 거야?"

  지민이 장난스레 답했다.

  "배우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어. 내가 너무 자아 없이 사는 것 같아서."

  말을 뱉고 나서 후회하는 표정과 웃음이었다. 나는 그 의미도 묻지 못했다. 내가 물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있을까. 그냥 같이 웃었다.

  왜 레종을 바꿔 가며 피우는 거냐고도 묻지 못했다. 네 담배가 자주 바뀐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다고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의문이 단지 의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민이는 대체 뭘 바꾸고 싶었던 걸까.

  햇빛이 점차 뜨겁게 내리쬐며 지민이는 모자까지 벗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쓸어내렸다. 모자를 벤치 위에 올려놓았다. 그늘지지 않은 얼굴이 한층 더 밝고 예뻐 보였다.

  "지민아."

  이름을 불러놓고, 나는 꼴깍 침을 삼켰다. 지민이가 담뱃재를 탈탈 털며 나를 보고 있었다. 길게 찢어진 큰 눈, 상처 입은 작은 얼굴과 목.

  "너 남자친구 있어?"

  나도 모르게 걱정스레 물었다. 많은 것이 아주 오랜만이었다. 한 사람을 이렇게 꾸준히 의식하는 것, 관찰하는 것, 오랫동안 말을 섞는 것, 그 말에서 굳이 굳이 외로움을 포착하는 것, 짐작하고 걱정하는 것, 또 간섭하는 것.

  "있었는데, 없어졌어."

  답하며 웃지 않았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금세 웃음으로 돌려놓았다. 나도 웃었다. 나는 정답을 맞추기 싫은 기분이 되었다.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시선을 조금 돌린 채 담배만 계속 빨았다. 한참 연기를 머금는데, 지민이 옆에서 물었다.

  "너는 있어?"

  순간 사래가 들릴 것 같았다.

  "아니."

  답하며 나도 웃지 못했다. 평범한 질문이고, 나도 물어놓은 것인데도. 퉁명스러울 것까지는 없었는데.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은 영 낯설었다. 나는 머리가 짧을 때는 가끔 남자로도 오해 받았다. 자연스럽게 여자친구가 있냐는 말을 들을 때도 적지 않았다. 전적대에서 아웃팅을 당하고 편입하기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주제였다.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 같기도 했다. 금세 표정에 웃음기를 띄웠다. 띄우려 노력했다.

  잠시 어색하게 서로 담배만 피웠다. 피우며 옆모습을 흘긋 봤다. 빠르게 깜빡이는 눈꺼풀, 쉼 없이 입술에 갖다 대는 흰 손가락들. 약지. 없는 반지. 나는 필터까지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세 번째 장초를 비벼 껐다. 머리가 띵했다.

  지민이도 담배를 껐다.

  내가 꽁초 다섯 대가 버려진 재떨이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지민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붙잡고 끌어당겼다. 꼭 끌어안았다. 단단히 안고 조금 훌쩍였다. 소리가 크고 애달팠다. 문득 나도 같이 울어버릴 것 같았다. 

  "괜찮아?"

  어깨를 붙들고 울던 사람이 단숨에 내 턱을 감싸고 얼굴까지 당겼다. 대학교 건물 뒷편에서 여자와 키스 하는 걸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지금 막 담배를 피운 입에서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났다. 사실 담배 향이 나야 하는데. 아랫입술은 보던 것보다도 볼록했고 터져 있어 조금 까슬했다.

  내가 가슴팍을 밀쳐냈다. 놀란 눈이 갈피 없이 흔들렸다. 버거운 숨에서 허브 향은 천천히 새어나갔다. 지민이는 반쯤 눈을 뜨고 있었다. 반쯤 감고 있었다. 나는 밀어내놓고 눈을 떨다가도, 무심코 한 번 더 몸을 숙여 얼굴을 들이댔다. 이번에는 지민이가 나를 밀어냈다. 입술을 닦아낼 생각도 못하는 채, 어깨까지 바르르 떨고 있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 걸까. 떨며, 울고 있었다. 눈만 끔뻑이던 지민이가 문득 입술을 훔치다가, 상처를 건드려 아팠는지 표정을 찡그렸다. 괜찮냐고 물어야 했는데 나는 이번에도 묻지 못했다. 괜찮냐고도, 왜 미안하냐고도, 나는 괜찮아라고도 하지 못했다. 그도 아니라면 아냐 내가 미안해라고 말해야 했는데 그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민이가 한 번 더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말하며 방울째로 눈물을 뚝뚝 떨궜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괜찮냐고 물어보려 했다. 지민이는 가방을 꾹 쥐고 벌떡 일어났다. 사과하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미안해, 세 번째 사과였다.

  그 뒷모습에조차 형언하기 어려운 존재감 같은 게 있었다. 그 그림자마저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 아우라 같은 것이. 더는 그 애가 점으로도 보이지 않게 된 순간에도, 그곳에 그 무언가는 남아 있었다.

  충동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지민이는 나한테 일말의 호감 같은 것이라도 있었을까.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보지도 않을 의문들. 단지 의문만이 아닌 의문들. 호기심이 슬플 수도 있을까. 나는 내 의문이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다.

  담배를 꺼내 피우려고 보니 전부 피웠다. 나는 지민이가 벤치에 두고 간 레종 블루를 집어 들었다. 돌려줘야 할 것을 하나 꺼내 피웠다. 그 맛 없는 레종 블루를, 목이 케케해질 때까지 몇 대고 피워냈다. 이 담배, 돌려줄 수 있을까.

  빈 곽을 버렸다. 모자도 놓고 갔네. 돌려줘야 하는데.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으로 벤치를 더듬었다. 보라색 꽃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꺾어서 손에 둘렀다가 버렸던 것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시든 꽃. 왜 하필 같은 색일까.

  그 애가 왜 그랬을까.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 것 같고, 모르고 싶은데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아서 서글펐다.

  향기가 달랐다. 전 애인을 추억할 때 그 텁텁한 담배 향기를 함께 추억했다. 맞담배를 피울 때 피어오르던 메케한 연기만큼이나 독하고 진했다. 아웃팅 사건 후에 나를 아는 척도 안 하던 그 애, 밉지 않았다. 쓸쓸했을 뿐이었다.

  그 애는 그 애를 닮았다. 향이 나는 것마저 닮았다. 이제 알릴 리도, 알릴 수도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도 미안했다. 얼굴과 손가락을 의식하고, 향을 맡았던 것까지 전부. 왜 몸에서 향기가 났던 걸까. 담배를 피우는데, 왜 허브 향이 났던 걸까.

  지민이는 내가 남자 같았을까. 어쩌면 그래서 미안했을까. 누군가를 누군가의 대체재로 만드는 것. 그 순간이 지민이에게 위로가 되었더라면, 그런 것은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해가 지면 노을이 진다. 땅거미가 꺼지고 밤이 깊으면 서늘해진다. 벤치에 계속 앉아 있다. 강의 교안을 넘기며 담배를 피운다. 레종 블루를 다 피워낸다. 아우라, 아우라. 서글픈 추억에 울먹이는 일은 익숙하다. 끝끝내 울지는 못한다. 반나절 전의 지민이는 이제 추억이 된 것만 같다. 교안이 문득 흐릿해지지만, 눈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 뒤 종종 레종을 사서 피우면, 입 맞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애는 계속해서 담배를 바꾸고 있을까. 아니라면 잘 정착했을까.                    




  소문을 들었다. 시디과 학생 하나가, 데이트폭력으로 중상을 입었고 뉴스에 실렸다고 했다. 더는 지민이를 볼 수 없었다. 철학과 강의실에 허브 향기가 감도는 일을 바랄 수 없었다. 그 빈자리는 되감을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 혹은 한순간의 환상 같기도 했다. 늘 뒷자리에 앉던 머리 길고 볼캡 쓰는 여자애, 다들 그게 누군지 모른다. 강의실에 부재한 향의 이름을,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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