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자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운다고 바로 달래주지 말라고. 뜻대로 안 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참 잔인하게 들렸다. 이제 고작 6개월인데? 의사표현도 정확히 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왜 그래야 하지? 반감이 더 컸다. 물론 말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아버지의 그 말이 오랫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 불편함은 무엇일까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음에 대해
나의 어린 시절은 물론 어른이 된 후로도 나를 가장 힘들 게 했던 것은 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배우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우리 집은 남들과 달랐고 그 다름을 혼자 견디기 위해 나는 아닌 척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습관적으로 웃는 사람이 된 것도 그래서일까란 생각을 한다. 작게 올라온 작은 하얀 이를 보여주며 활짝 웃는 아이를 보면서도 '너도 혹시 습관적으로 웃는 건 아니지? 울고 싶은 데도 웃고 그럼 안되는데..'라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어른이 되면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거라 기대했다. 가족의 굴레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나의 노력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좌절에 강해지기 보다는 좌절에 포기를 배웠고 버림을 배웠고 꿈의 과대포장을 줄이기로 결심할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아이에게도 뜻대로 되는 게 없음을 가르치라고..... 그 말의 의미를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말이 불편하다.
#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없음을 배우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또 한 번 나는 좌절을 배운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아이를 통해 또 한 번 배운다. 늘 먹던 분유인데도 어제는 잘 먹고 건강하던 아이가 오늘은 갑자기 잘 안 먹고 설사를 하기도 한다. 잘 자던 아이가 어느 날은 갑자기 두 세 시간마다 자다깨기를 반복하며 갑자기 울어댄다. 안아줘도 소용없다. 그러다 또 활짝 웃으며 엄마의 걱정을 무색하게 한다. 이런 밀당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대화도 안 통한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화를 낼 필요도 없다, 당연히. 아직 의사표현을 할 줄 모르는 이 아이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배고픈 건지 아픈 건지 그냥 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심심해서 그런 건지, 이 울음과 짜증의 의미를 알려주는 통역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게 아이를 보며 예상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임을 또 한 번 배운다.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배워야 할까.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뜻대로 되지 않음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가끔 아득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나의 의지로 산다지만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되는 대로 살아서도 안 되는 것.
나는 가끔 아이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주곤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너무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기 바래, 라고. 그리고 이 말도 꼭 덧붙인다. 엄마가 되게 해 줘서 고마워, 라고. 나의 아이는 그랬으면 좋겠다. 자신의 태어남이 행복하고 즐겁고 잘 놀다가는 기분으로 자신의 삶을 마쳤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가장 큰 선물이자 바람이다. 역시나 과한 꿈일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