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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01. 2023

오쇼의 <장자, 도를 말하다>

믿고 읽는 책 중 한 권이 번역가 류시화 씨의 글이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그분의 글은 내용이 무엇이든 무조건 손을 뻗는다. 이 책도 그렇게 내게 온 책이다.      


신발이 발에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

허리띠가 허리에 꼭 맞으면 

허리의 존재를 잊는다.     

마음이 옳으면

모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잊는다.

무리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유혹되지도 않는다.

그때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때 그대는 자유인이다.”     


<신발이 발에 맞으면>이라는 시의 일부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다. 불편함이 없다는 건 편리하단 의미다. 불행하지 않다는 건 행복하단 의미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잊는다. 행복은 커다란 행운이 찾아올 때만 있는 것이라 여기며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하는 일이 순탄하고 하루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에 대해 감사히 여기지 않는다. 찾아보면 감사의 요소는 많다. 무엇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감사의 마음을 잊을 때 삶은 불행해지는 것 같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림자를 갖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싫어한 나머지

그것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방법은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발을 내디뎌 달리면 달릴수록

새로운 발자국 소리가 늘어만 가고

그의 그림자는 조금더 어려움 없이 

그를 따라왔다.     


그는 이 모든 재난이

아직 자신의 달리는 속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힘이 다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단순히 그늘 속으로만 걸어 들어갔어요

그의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도

그의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자와 발자국 소리>이라는 시 중 일부다. 길지만 내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 그대로 인용했다. 자꾸 읽고 또 일게 된다. 그림자는 내 안의 어둠이다. 내가 억누르고 있던 마이너스 생각이며 마이너스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하게 선하고 옳고 바를 수는 없다. 악한 감정 또한 인간의 감정이다. 게으르고 귀찮고 비뚤어지고 모나고 투정부리고 화내는 모습도 나의 모습이다. 그것들은 버려야 하거나 모르는 척해야 하는, 숨겨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인정하지 않기에, 자꾸 도망가려 하기에 나는 그것들에 예민해지는 것이다. 나의 일부임을 거부하며 나를 이상에서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존재한다는 것그것은 곧 그림자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대의 성냄성욕욕망-이 모두가 그림자다그것들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들은 존재하지만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그림자의 뜻이 바로 그것이다.(p65)”   

  

졸리 점퍼를 처음으로 타본 아이가 처음으로 신기해 한 것은 혼자 두 발로 서 있다는 것도, 발을 움직이면 몸이 움직인다는 것도 아닌, 자신의 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였다. 처음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까 했는데 가만히 바라보니 발밑의 그림자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서봤고 홀로 섰을 때 보인 것은 천장이나 주변이 아닌 자신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이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랬을지 모른다. 내가 홀로 섰다고 믿던 그 순간은 나의 그림자를 만났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증명은 거짓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어떤 것을 증명하길 원한다면그것은 곧 그대가 그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다.(p142)”     


몇 번을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세상 모든 이치에 통용되는 말이다. 믿고 있다면 증명은 필요 없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굳이 사랑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기에. 나는 가끔 내 아이를 보면 궁금하다. 내 아이는 과연 나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까, 라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 이 아이에게도 온전히 전달이 될까, 라고.      


나는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늘 의심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다. 부모에게는 자신의 삶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했다. 자식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했고 아버지에게는 자식보다 자신의 일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라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나의 오해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그들의 사랑의 표현방식이 나와 다르다고 여긴다.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아이는 어떨까.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는 사랑해 줄 수 있는가, 굳이 증명을 필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해 줄 수 있을까.    

 

진정한 스승은 눈을 준다    

 

진정한 스승은 그대에게 결코 규칙을 주지 않는다진정한 스승은 눈을 준다그는 결코 길을 보여 주지 않는다이것이 길이니 이 길을 따르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그는 그대에게 오직 빛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 빛을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라그러면 이 빛이 그대의 길을 보여 줄 것이다.’ (...) 이것이 지도다. (...) 그대가 빛을 갖고 있다면 지도는 필요 없다그대는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길이 각자 다르다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p151)”     


인용이 많은 서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의 하찮은 감상보다 인용이 훨씬 값어치 있고 의미 있기 때문에 그래야만 한다. 좋은 책은 정답이 하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한다. 좋은 스승이 결코 규칙을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조언할 수 없다. 하물며 원치 않는 사람에게 함부로 조언을 해서도 안 된다. 정답은 모두 자신 안에 있고 그 정답을 찾도록 도울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것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모두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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