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만났다. 좋은 책이라 부르는 건,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잘 듣는 기술에 관한 책은 사실 참 많다. 이전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고 아마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책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은 심리상담사인 저자가 자신이 업무 중 사용하고 있는 듣기의 기술을 정리한 글이다. 주제도 간단하다. 있는 그대로 들어라, 말하지 말고 들어라, 다. 응? 이게 다라고? 별 것 아니네, 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정말 우리는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가? 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말하기 위해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 수용, 공감, 자기일치
수용, 공감, 자기일치는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저자가 상담사로 일하며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 핵심이기도 하다.
“심리상담자는 내담자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받아주고(수용), 마음을 알아주며(공감), 자기 생각을 정리(자기일치)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p50~51)”
수용이나 공감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일치다. 심리상담이든 심리요법에서든 기본 전제로 여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말하는 상대가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의 역할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 이것이 잘 들어주는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p159)”이라는 표현도 한다.
이 말들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대화 상대가 바라는 것은 비판이나 조언이 아닌 ‘수용, 공감, 자기일치’라고. 우리가 듣는 이의 위치가 아닌, 말하는 이의 위치에 있다고 가정해 보면 이 말의 뜻을 잘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순간은 아마 그 사람에게 무언가 조언이나 비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사정과 어려움을 호소하고 공감을 얻고 싶은 것뿐이지 않을까. 그들의 심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묻지 않을 준비
잘 듣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중 하나는 ‘묻지 않을 준비’다. 잘 듣기 위해서는 묻지 말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조언하지 않기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않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기
그런데 말이야..라고 말하지 않기(p63)”
뜨끔해진다.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상담을 청하거나 고민을 말하면 난 늘 이것들을 말해왔다. 조언까지는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내 경험이나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의견이나 등등을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원하는 건 내 작은 대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답은 결국 말하는 이 자신에게 있다. 나의 문제가 그러했듯이. 나는 정작 심각한 고민이 생기면 나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입을 더욱 다문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타인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어 왔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러워진다. 듣고 있는 줄 알았지만 듣고 있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 진지함이라는 장벽
잘 들으려고 하지만 듣지 못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저자는 ‘진지함’을 들고 있다.
“진지한 사람은 상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나머지 오히려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원인은 ‘멘탈 노이즈’입니다.
(...) 멘탈 노이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다음 5가지가 있습니다.
완벽주의 노이즈, 시간은 돈이다 노이즈, 접대 노이즈, 파이팅 노이즈, 바른 생활 노이즈(p84)”
즉, 진지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고민 상담에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고 열심히 들으려다보니 축 처진 상대를 힘 나게 해주고 싶다든가, 자신만의 옳고 그름이 강해서 상대의 이야기를 시시비비 가리게 되기도 하고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하기도 한다. 또 한번 뜨끔해진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진지충이라 부를 정도로, 나의 진지함이 단점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에게 유연함이 필요함을 자주 느낀다. 나를 지켜준 신념과 가치관이 나를 부러지게 만든다는 생각을 삼십 대 이후 많이 하게 되었고 다름을 다름일 뿐 틀림이 아니라고 자주 되뇌이지만 역시나 나의 논리, 나의 상식, 나의 가치관, 나의 신념이 늘 나는 강하다. 그것들이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나를 가두기도 한다.
“듣는 사람은 상대를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갖고 대화해야 합니다.(p96)”
알면서도 쉽게 잊고 마는 말.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쉽게 내뱉는다. 이해할 수 있다고. 나도 네 맘 안다고. 하지만 알지 못한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해석하거나 분석, 비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한다.
# 공감하되 동감하지 않기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 중요한 한 가지가 또 있다. 바로 공감하되 동감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심리상담에서는 공감과 동감을 이렇게 구분한다고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자신도 뛰어들어 ‘힘들지?’하며 함께 허우적거리는 것이 동감이고, 물에 빠진 사람을 바라보며 ‘많이 힘들겠군!’하고 감정과 기분을 상상하는 것이 공감은 하되 동감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p107)”
공감은 해도 동감은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세다. 흔히 타인의 상담을 많이 들으면 지친다고 하는데 그건 상대의 상황이나 처지, 감정에 ‘동감’해 버리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공감은 해도 동감하지 않아야 한다. 이 또한 내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다. 타인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내가 대신 무언가라도 하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슬픔은 그래서 나에게 너무 버겁다. 스폰지처럼 쉽게 흡수되어 나마저 괴로워진다. 공감 능력이 좋은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로인해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 히어
약 열흘 전에 다 읽었으면서도 쉽게 서평을 쓰지 못했다. 나에게 너무 필요한 책이라서 흥분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것도 있었고 어떻게 정리하면 가장 나에게 오래 남는 책이 될까, 라는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곱씹고 싶었다.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히어(hear). 이 제목을 곱씹다 보니, 제대로 된 히어가 내 주변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함이나 슬픔, 괴로움, 포기하고 싶음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나에게는 어쩌면 ‘히어로(hero)’가 아닐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