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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30. 2023

수지 모건스턴 외 1인의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이 책의 주제는 간단하다.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교환일기처럼 같은 상황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글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글의 서두에서 엄마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쓰기 게임을 통해서 딸아이와 나는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를 배운 것이 아닐는지(p6)”라고. 딸인 두 번째 저자도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한 여자가 있다는 것그리고 나의 고독한 성장의 탐색이 그녀에게는 아픔이 된다는 것이 보였다내 어머니에 대해서 품고 있는 사랑매일 매일의 말다툼과 화해 덕분에 숨쉬고 있는 이 사랑.(p7)”이라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두 모녀지만 서로는 안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그러나 그 사랑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끊임없이 부딪혔는데 글을 통해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줄거리다.    

 

우리는 함께 길을 걷는다딸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입을 열었다간 말다툼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늙은 부부 같다.(p203)”     


재미있는 표현이다. 애증의 관계인 부녀. 나는 사실 이 느낌을 모른다. 모르기에 부럽기도 하다. 한없이 기대도 되고 짜증을 부려도 받아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는 동성의 여인. 그런 관계를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엄마와의 관계보다는 내 아이가 커서 우린 이런 모습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와 요즘 이유식으로 대치를 하곤 한다. 먹지 않으려는 아이와 먹이려는 자의 대치다. 가끔씩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리지만 먹기 싫다고 푸푸거리며 입안의 음식을 날리기도 하고 수저를 손으로 탁쳐서 날려주기도 한다. 그러다 화가 날쯤에는 다시 미소와 작은 입으로 새 모이만큼 받아먹는다. 깜빡이지 않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세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딸. 나도 그냥 멈추면 되는데 요즘엔 오기가 생겨서 힘들게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어진다. 세상에 나온지 1년도 안 된 이 아이와 내가 왜 이렇게 대치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만다. 내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나는 이 책보다 더 두꺼운 일기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상상도 해 본다.     


그래나는 이 아이를 사랑한다어떤 사람의 딸은 책꽂이 정리를 아주 잘 할 것이다또 어떤 사람의 딸은 날씬하다. (...) 조카딸은 자기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그래도 난 이 세상 딸을 다 준다 해도어떤 딸과도 내 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p204)”     


이것이 엄마다. 옆집 딸이 더 잘나 보일지 모르지만 엄마 눈에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미의 기준이 있다.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사랑이 있다. 그게 엄마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전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내 속을 훤히 꿰뚫어보지는 못할 것이다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잃어버리고 다니겠지만 큰일은 안 날 것이며말없이 내 속 깊숙이 쓰디쓴 회한을 간직하게 될 것이며 때로는 그녀도 나처럼 존재하고고통받고 사랑한다는 것을 잊을 것이다.(p208~209)”   

  

그리고 이것이 딸이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고 항상 과하게 걱정한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딸은 알게 될 것이다. 엄마도 자신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한 사람의 사람일 뿐이라는 걸. 그리고 딸은 고백한다.     


그래나는 그녀를 사랑한다.(p208)”     


세상의 모든 부모자식 관계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자식이 원하는 부모의 이상형과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이상형은 늘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부녀지만 그들에게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믿음과 사랑이 있다. 부부의 사랑과는 다르다. 남편은 때론 남의 편이 되지만 자식은 절대로, 남의 자식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이렇게 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다. 나는 나의 딸과 어떻게 마음을 주고받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우리 딸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을까. 고작 이유식 하나로도 대치하는데 얼마나 많은 애증의 싸움을 거쳐야 할까. 쉽게 읽었지만 오래 생각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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