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야 알 수 있는 행복
감기에 걸려 버렸다. 감기에 몸이 힘든 상태로, 하루종일 마스크를 쓴 채로 아기를 돌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언니에게 하니 언니가 말한다. "생각해보면 힘들었지만 그때가 행복했던 거 같아"라고. 언니의 그 말이 통화 후에도 계속 맴돌았다.
언니의 육아가 순탄치 않았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시댁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임신한 상태에서도 그렇고 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몸조리도 하지 못한 상태로 시댁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했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긴 머리는 단발로 싹뚝 잘라버리고 화장은커녕 출산으로 뒤집어진 피부가 벗겨져서 아기 크림만 간신히 바를 뿐이었다. 하루종일 엄마 껌딱지였던 큰 아들을 매일 포대기로 업은 상태로 집안일을 하고 화장실도 갔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언니가 지금의 나를 보며 말한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었어도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 행복은 모자이크다
행복이란 모자이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 멀리서 봐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것. 언니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은 크기에 조금이라도 다칠 새라 불안한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나의 감기도 별 것 아니지만 혹시라도 아기가 옮으면 그냥 감기로 끝나지 않고 장염에 설사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 조심스럽다. 설사가 오면 기저귀 발진도 같이 와서 더 아파한다. 아파서 잠도 잘 못자고 이유식도 잘 못먹고 병원 약까지 먹어야 하니 100센티도 안 되는 작은 몸에는 너무 가혹하다.
언니의 말을 계속 곱씹으며 지금이 얼마나 평화로운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하루종일 마스크 쓴 채로 기침도 참고 있지만 내 곁에서 아이는 쉼 없이 장난감을 어지르고 가지 말란 곳을 가고 만지지 말란 것을 만진다. 하지만 이렇게 곁에서 내가 지켜줄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일 것이다. 지금은 위험한 곳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울며 나를 찾고, 엄마에게 기어와서 안기지만 언젠가 이 아이도 그런 어려움과 무서움을 혼자 견디려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엄마는 안아주지도 못하고, 혹은 그 어려움과 무서움도 알아주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알고 후회하고 미안해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엄마가 웃기만 해도 까르르 웃어주지만 언젠가 커서 방문에 출입금지 팻말을 달아놓을지도 모른다.
어젯밤에도 아이는 잠투정에 한 시간을 몸부림쳤다. 안아주면 울며 내려달라 하고 내려놓으면 다리를 붙들고 안아달라고 조른다. 너무 가까이 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멀리가는 것도 싫다고 우는 아이. 너는 왜 이런 것마저 나를 닮은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안고 내리고 눕히고를 수십번 반복했다. 무릎 염증에 아프지만 아이를 안을 때는 언제나 포근하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잠투정을 받아주며 잠들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힘들다고 느낀 적도 많지만 언니의 말에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로소 알게 된다. 잠들기 직전까지 꿈틀거리며 이불 바깥으로 올라온 꼬물거리는 작은 손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던 현명함과 지혜로움. 지혜롭고 현명한 엄마,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