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특히 조용한 ADHD는 성인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사실 어렸을 때도 ADHD란 걸 찾기도 쉽지 않을 거 같다. 어린 나이에 과잉 행동을 하며 뛰노는 건 당연한 행동이니 말이다. 성인 대부분은 조용한 ADHD인데, 집중력이 떨어지고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특히 사회생활에 들어가면 그게 더 잘 보인다. 저 사람은 집중도 못하고, 다른 소리를 하고, 반복된 실수를 하며 중요한 업무 처리도 늦어서 야근하는 일도 많고, 보고 있자면 좀 답답할 거다.
난 도대체 왜 그럴까? 인생이 '?'이다
나도 ADHD를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내 성격인 줄 알고 그냥 지냈을 거다.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집중력도 없고, 정신이 산만하며 망상이 잦고, 내가 그걸 끊을 줄 모르고, 어느 한 소리에 꽂혀서 화를 내며, 충동적인 그런 성격을 가진 인간. 남들보다 바보 같은 사람이라 그 사람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았을 거다.
그런데 ADHD를 진단받았다. ADHD 검사를 했을 때 ‘저하’만 7개였다. 경계도 있다는데 내게 경계는 나오지 않았고, 저하만 7개였다. 12개 평가 중 5개만 정상이고, 나머지는 저하 7개로, 주의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비 목표 자극에 성급하다고 쓰여 있었다.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엄청나게 큰 변화는 아니지만, 소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달라지니 그게 큰 효과로 다가왔다. 제일 큰 것은 스스로 날 통제할 수 있다는 점과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
나는 충동성이 큰 편이었다.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지르고 보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가 늘 생겼고, 내게 신용카드란 독이었다. 월급보다 큰돈을 펑펑 쓰고 다음 달에 눈물을 흘리며 리볼빙을 신청하고, 그 카드값을 갚기 위해서 대출을 받고, 무한 굴레였다. 이게 스스로가 통제가 안 되어서 문제였다. 당시 행동을 할 때는 생각을 할 수가 없으며 모든 것이 충동적으로 이뤄지고, 그렇게 하고 난 뒤에 혼자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
또 금방 까먹게 되어서 강박증이 생겼는데, 약을 먹고 난 뒤에는 방금 한 행동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약을 먹기 전에는 고데기 코드를 뽑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집에 돌아오는 일도 많았고, 내가 회사 에어컨을 끄고 퇴근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1시간 거리를 되돌아가 확인한 적도 많았다. 집 문이 닫히지 않고 열려 있을까 봐 지하철역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가서 문 닫았는지 확인을 한 적도 많다.
게다가 중요한 물건은 어떤가. 나는 중요한 서류를 챙겼는지 기억이 안 나고, 나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길을 가면서 가방에 중요한 것이 있는지 도착할 때까지 확인한다. 수십 번을 확인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고, 내 눈으로 계속해서 확인해야 했다. 중요한 물건 같은 경우는 특수한 경우에만 나오는 상황이니 많지는 않았고, 매일 수십 번 눈으로 확인한 건 카드였다.
계산을 하고 지갑에 카드를 넣었는지 다섯 걸음만 걸으면 기억이 안 났다. 아니, 지갑을 가방에 안전하게 넣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가방을 열고 지갑을 확인한 뒤 카드가 잘 들어있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또 다섯 걸음 가서 ‘지갑에 카드 있는 거 확실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또 확인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무한 반복으로 이뤄지고, 머릿속에서 나는 외친다.
‘지갑에 카드 있음! 지갑에 카드 있음! 지갑에 카드 있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약을 먹으면서 고쳐졌다. 나는 요즘 지갑에 카드가 잘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불안감이 불쑥 찾아와 확인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빈도도 줄었다. 문 닫은 것도 기억이 나고, 중요한 서류 같은 것도 챙겼는지 머릿속에 콕 박혀있다.
특히 집중력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습관을 길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한번 집중하면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릿속에 잡생각도 들지 않고, 망상이 펼쳐지는 그런 일도 없다. 한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작업 속도도 훨씬 빨라졌고, 실수하는 것도 줄었다.
회의 시간에 사람들 말에 집중하고자 하면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차분히 내 의견을 전달하고 남 의견도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했을 것을 약을 먹고 난 뒤 달라진 걸 체감했다.
그러니 내가 안 억울할 수가 있나?
보통 사람은 이런 일을 쉽게 했는데 나는 약에 기댄다는 게 억울하다. 아니, 더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지금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대학도 충동적으로 2번이나 자퇴하고, 빚도 많고… 지금 내 삶은 ADHD로 살아온 전의 나를 수습하기에 정신이 없다.
물론 ADHD를 뒤늦게 알고 나서 성공한 사람도 꽤 되지만, 그래도 억울한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살았다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통제 가능하고, 노력하고자 하면 노력도 했을 거 아니야. 성공 욕심이 많은 나는 늘 ADHD 증상으로 실패만 겪어서 우울함에 빠졌는데, 그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삶이 조금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다. 뭔가 더 체계적인 미래를 구상하고, 계획을 세우고 머리도 빠르게 돌아가 실수하는 일도 없고, 대인 관계도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억울하긴 하지만, 불만은 이 정도까지 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 안 하려고 해도 불쑥 튀어나와서 내 전 삶에 눈물이 찔끔 나지만, 지금이라도 아는 게 어딘가. 평생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나는 약을 먹으면서 20년 넘도록 안 좋게 살아온 습관을 고치려고 하고 있다. 다리 떠는 것도 습관인지라 최근에는 안 떨려고 노력 중이고, 문장도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영상 같은 것도 긴 것을 집중하며 보려고 노력 중에 있다. 예전이라면 아마 노력해도 안 됐을 거다. 머릿속에 불쑥 튀어나오는 잡생각들이 나의 노력과 집중을 방해했을 거다. 하지만 약 먹고서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중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 말을 잘 들으니 회사에서 대인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