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매우 바쁘게 살았다. ADHD 약을 먹으면서 계획을 짜고 하는 일이 많아져서 글 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바쁘게 살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ADHD 진단받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을 요즘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ADHD 약인 콘서타와 우울증 약을 먹기 전에 나의 행동을 돌아보면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이 할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하고 싶을 걸 하자며 머릿속에 떠오른 일을 시작하지만, 벽을 만나면 금방 포기한다. 그러면 나는 우울감에 빠지고 침대에 누워서 한동안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무기력이 어떤 기분이냐면, 우울이라는 바위가 내 몸을 눌러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이미 성취감이 박탈당한 나는 ‘어차피 해서 뭐해. 나는 끈기도 없고, 뭣도 없어서 금방 포기하게 될걸.’라고 생각하며 바위에 짓눌린 채 누워만 있는 거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을 때, 선생님께서 ‘성공 욕구는 매우 강한데, 실패가 반복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니 우울증이 온 거 같다.’라고 했다. 뭐,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우울증이 있었겠지만, 선생님은 내게 우울증이 자리 잡게 된 건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가로막은 환경’을 가장 크게 보았다.
나 같은 경우는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했고, 나는 ADHD 약을 먹으면서 실제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뭐가 됐든 안 됐든, 조그마한 일에도 성취감을 느끼니 기분이 좋다.
ADHD 약을 먹기 전에는 무언가를 끝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항상 포기하는 일이 많았고, 실제로 끝내는 일이 드물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끝내지 않아도 성취감을 느낀다. 글 하나 쓰는데도 성취감을 느끼고, 인스타 툰을 올리는 데에도 성취감을 느낀다. 스케줄러에 적힌 내 일정을 하나씩 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끼고, 꾸준히 집 청결을 유지하는 나를 보면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내 작업물이 눈에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일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분이 안정화가 되었고, 예민함도 많이 줄어들었다. 화나는 일도 많이 사라졌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도 갑자기 쓸모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대성공을 이룬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잘 풀릴 거 같은 기대감과 그곳을 위해 열심히 달릴 수 있을 거 같은 확신까지 생겼다. 조그마한 성취감 때문에 말이다.
이런 작고 작은 성취감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실제로 선생님도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내 말을 듣고선 ‘성취감을 느끼고 있으셔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충동적으로 시작하는 거 같아서 고민된다는 내 말에, 충동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끝마쳤으니 좋게 생각하자고 하셨지만..)
예전과 다르게 사는 삶.
약을 먹기 전에는 과몰입하는 거나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을 빼고는 늘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았고, 무기력을 벗어나고자 별 방법을 써보았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새는 침대에 누워있는 일도 드물다. 주말에도 의자에 앉아서 내 미래를 위해서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오히려 쉬기 시작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할 때도 있다.
무기력한 내 인생에 필요했던 건 그저 ‘ADHD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이었던 거 같다. 조그마한 성취감 하나로도 인생이 달라져 보이고 힘찬 느낌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