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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현황 Nov 22. 2021

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26. 발목이 이상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24일 차, 빌라 프랑카 -> 라 파바  25km


폰페라다 ~ 빌라 프랑카  25km
Ponferrada ~ Villafranca Del Bierzo  25km 



큰일이다...!! 첫 부상... 발목이 고장 났다.
알베르게를 나온다.

이전날 폰페라다로 향하는 길은 거친 자갈길과 급경사의 길들로 고생을 했던 날이다. 여러 번 발목이 꺾일 뻔했었지만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으로 어제까지 걸어왔다.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빌라 프랑카(스페인 하숙 마을)에 도착하고 음악 축제를 즐기며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발목이 살짝 부어있었다. 별거 아니겠지 하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았다. 


 큰일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대가 돼서야 발목에 통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늘 걸음에 대해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크게 아프지 아니니 괜찮겠지... 하며 걸음을 시작했다. 친구들 먼저 보내고 나와 해태(생장 가는 길에 내 여권을 주워준 친구) 이렇게 둘이 천천히 걸음을 가기로 했다. 

유해진님이 건너던 그 다리

스페인 하숙에 나오던 마을, 건너는 다리, 아침에 유해진 님이 러닝 하던 그 오솔길까지 내가 걷는 길에 놓여있다. 유해진 님처럼 러닝 하며 그 길을 지나진 못하고 쩔뚝거리며 걸어갔지만 방송에서 보던 그 길을 지난다니 기분이 새롭다. 걸으며 처음 부상을 입고 걸었던 날이자 방송에서 보던 그 장소를 지난다는 설렘이 있었다는 것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마을을 벗어나 2km 지낫을까, 왠지 오늘 아주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풀려도 발목에 통증은 여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누구나 순례길을 걷다 부상이 찾아왔을 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떡하지.. 계속 걸어도 될까 아니면 어디선가 멈추어 쉬어야 하는 걸까... 이 길의 중반부를 지나고 나서야 찾아온 부상에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오늘 가는 길에 좁은 간격으로 마을이 위치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순례길을 걸을 때 앱을 이용하여 미리 마을 간의 간격을 확인해 둔다면 이런 상황뿐 아니라 급하게 화장실을 간다던지, 매우 배가 고프다던지 하는 상황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쉬어주었다. 사실 걸음을 계속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 잠시 걸음을 멈출만한 이유도 통증이라고 하기엔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야금야금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걷다 보면 어디선가 멈추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내가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다면 오늘의 코스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평지를 걷고 있었으니 이런 생각을 했지, 만약 산지를 걷고 있었다면 나오는 첫 마을에서 걸음을 멈췄을 것이 분명하다.


스틱은 내 지팡이가 되어주었고 자주 휴식을 취하며 발에 무리를 풀어주니 조금씩 걸을 에너지가 재충전되었다. 아주 짧은 양의 에너지였지만 평소보다 자주 쉬어주니 나름 걸을만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천천히 걷다 보니 주변의 풍경도 평소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순례길을 걷다가 부상이 찾아왔을 때, 가능하면 걸음을 멈추고 쉬는 것이 좋겠지, 무시하고 가던 길 계속 걸어갔던 그 생각이 무엇이었을지 나도 궁금하다. 나는 그날 그 시간에 왜 계속 걸어갔을까? 첫 부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에이 모르겠다 하고 걸었거나... 


오리는 꽥꽥 순례길 추억은 방울방울


걷다 보니 정말 여러 동물을 만났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말, 소떼부터 메세타 평야에서 양 떼와 양치기 개들, 염소, 토끼... 개나 고양이는 어느 마을에서도 만날 수 있고 이제는 오리까지 만났다. 그것도 아주 성질 사나운... 귀엽게 생긴 오리들이 있어 울타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꽤~~~~ 액하며 울기 시작한다. 


마침 바나나를 먹고 있었는데 바나나를 앞으로 내밀었더니 더 크게 꽤~~ 약하고 운다. 오리가 이런 것도 먹어...? 내가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에 자기들도 달라고 하는 모습이었다. 미안. 이건 내 거야



순례길에 남기고 온 추억


걷다 쉴만한 곳이 나오면 쉬곤 했다. 바가 나오거나 벤치가 나오면 멈춰 한 번씩 발목을 풀어주었다. 어느 벤치에 앉아 여느 때처럼 주변을 둘러봤는데 주렁주렁 무언가가 매달려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이것은 마치 남산타워(현 N타워)? 


구남산 타워 현 N타워 ㅋㅋㅋ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이렇게 느낀다. 모두가 아는 것들의 이름이 바뀌어가는 것을 볼 때.

어떤 의미를 지닌 장소였을까? 이곳엔 왜 이렇게 많은 목적지 없는 편지들이 달려있고, 사람들은 어떤 편지를 남겨두었을까?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나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배낭 안에 볼펜과 편지지 몇 장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슥슥 써 내려갔다. 어딘가에 있을 신 혹은 정말 있을지 모를 God에게. 그리고 또 내가 사랑하면서 미안했던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자물쇠와 함께 메달아두었다.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던 곳이다. 신에게 그리고 사랑하고 미안한 사람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기분은 참 묘했다. 이전에 이런 편지를 썼던 적이 있던가? 아마 연애편지 말고 써본 적이 없었을걸?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그리고 차마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적어두었고, 마음속에 짐들을 편지에 남겨두었다. 부디 마음에 있는 짐들이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면서...     


마치 일기장 같았다. 그리고 왜였을까 갑자기 이곳에서 솔직해진 것은. 


나의 흔적, 지난 미련과 후회 그리고 소망의 무게를 이곳에 살며시 내려두었다.



스페인이 좋았던 이유


스페인엔 정~말 동물이 많다. 위에서 말한 대로 말, 소, 염소뿐 아니라 마을 안에 들어가면 강아지와 고양이를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동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분들이라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나는 동물 애호가로서... 지나갈 때 만나는 애기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매번 인사하고 애교 부리는 거 구경하고 하다 보면 한 템포씩 쉬어가곤 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애기들이면 더더욱. 어찌나 개냥이들이 많은지 피하는 모습보다 앵기려하는 모습을 더 쉽게 보곤 한다. 이전엔 바게트 빵 ASMR 하는 진돗개도 봤으니까... 


요런 녀석을 만나고 나면 정말 힐링하는 기분이 든다. 사르르르르~ 마음이 녹아내린달까? 어디서 사는지 꼬질꼬질한데 또 사람은 엄청 좋아하고 경계하지도 않고 멀뚱멀뚱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구경한다. 우리의 다른 이목구비를 얘들은 알아볼까? 얘는 왜 하얗고 얘는 왜 검은색일까?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친구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다 똑같은 '닝겐'으로만 보일 수도 있겠다. 간식 주면 좋은 사람, 안 주면 무심한 사람. 이런 경계선으로만 나눠질 뿐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고 있지 않을까


 인간으로서 사는 이런 삶보다 비록 야생에 속해있더라도 저런 고양이 강아지로서 살아가는 견생, 묘생은 어떨까... 때로는 너무 피로한 우리 삶에 놓여있을 때 난 그들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물론 다시 태어나면 강아지나 고양이로 태어날래? 한다면 난 아직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하하



끔찍한 라-파바 가는 길, 다시는 만나지 말자.


걷다 보니 라 파바 가까이 오게 되었다. 이렇게 된 거 좀 더 걸어가 보자. 친구들이 오늘 카레 해먹 자는데... 나도 먹고 싶었다. 카레가. 라 파바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 말로 이곳엔 마트가 없다고 한다. 직전 마을에서 카레 재료들을 사 와달라는 특명에 나는 반드시 그 마을까지 가야 했다.


특명! 카레 재료를 공수 해오라


 그렇지만 특명이란 이름에 걸맞게 라 파바로 향하는 마지막 2km는 마치 피레네와 같았다. 거친 경사와 자갈길 그리고 길이라 하기 애매한 산길... 솔직히 말해 정말 뒤지는줄 알았다.  아니 거의 뒤질뻔 했다..!!


라파바 가는 그 길은 정말 위험하더라! 피레네를 떠올리게하는 그 경사.. 이것은 마치 PTSD 덜덜덜 나 뿐 아니라 그 시간에 올라가는 다른 분들도 많이 지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거운 배낭에 카레 재료로 준비해간 감자, 양파, 당근 등... 한 봉다리 들고 가면서도 혹여나 카레 재료를 흘리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배낭 위에 안전히 매달고가야했다. 가파른 경사를 메달려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라-파바 마을이 나타난다. 이것은 뭐랄까... 산 정상 위 오두막같은 느낌의 알베르게가 나타난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넓은 정원과 알베르게 한채. 그 옆에 작은 교회 하나. 


마치 별장같은 느낌이 드는 알베르게였다. 정말 고요하고 자연의 소리가 들리며 하늘에서 내리는 햇살이 풍경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낸다. 특히 파란색으로 칠해진 의자는 중앙에 순례길 문양을 새기고 우리의 휴식을 기다리고있다.  집에 이런 의자 하나 가져가고싶다. 언제든 저 의자에 앉아서 쉰다면 이 날이 생각날 것 같아.

 발목의 통증을 참고 야금야금 걸어가다보니 빌라프랑카에서 라-파바 까지 도착했다. 마치막의 가파른 경사를 기이고 결국 올라왔다. 아픈걸 참고 꾸역꾸역 올라간 것이 참 어리석은 결정이있을 수 있지만 막상 오고나니 뿌듯하다! 아마 그만큼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스틱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이렇게 걸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 길을 걷는 누군가가 부상을 입고 길을 고민할 때, 나는 함부로 걸음을 멈추고 쉬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머물지 않고 계속 가고싶은 마음이 무언지 이해할 수 있고, 나 역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뒤쳐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날 왜 걸음을 멈추지 못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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