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은 초등학교 5학년때 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로 들쑥날쑥했던 생리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비규칙적이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던 나는, 과도한 스트레스 탓인지 거의 무월경에 가까웠다. 가끔 생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생리가 아닌 부정출혈이었다.
어린 마음에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 편했다. 생리통도 없었으며, 번거롭게 생리때문에 신경써야하는 일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중학교 때 친구와 케리비안베이를 갔었는데 친구가 생리중이라 힘들게 템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나는 생리를 안해서 참 편하구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저 '언젠간 이렇게 생리를 안하다간 큰 병이 나겠지...그래도 지금 편하면 됐다' 라고 생각했다. (그게 15년 후 암이 될줄이야..!)
생리통을 안겪어도 된다라는 어린 마음에 무월경을 방치하다
무월경을 방치한 죄
그래도 심각은 하다고 생각했는지 고등학교 때, 엄마와 동네 산부인과에 방문한 적 있었다. 그때, 자궁 내막이 두꺼워져있다며, 나에게 생리를 돌아오게하기 위한 피임약을 복용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에, 엄마는 어린 고등학생이 무슨 피임약이냐며, 손사래를 치시곤 황급히 산부인과를 나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피임약 복용이 아닌, 나에게 도움이되는 (부족한) 호르몬을 복용하는 것이었는데, '피임'이라는 단어가 엄마에게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나보다.
생리가 계속 없는 채,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생리를 안나오게 만든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무월경을 애써 외면해왔다. 또 하나의 방치 요인은 엄마의 말이었는데, 본인도 학생 때 생리가 불규칙했지만 나를 무사히 낳았다며 별일 없을 것이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기도 하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너무 걱정된 나머지 동네에서 조금 큰 산부인과를 제발로 방문하였다. 자궁내막이 매우 두꺼워 졌다는 것, 난소에 혹이 있다는 것, 자궁내막이 매우 두꺼워져 세포검사를 해볼 것을 권고하였다. 그날 수면마취를 하고, 소파술을 받아 자궁 내막의 세포를 채취하는 시술(?)을 받고 귀가하였다.
암입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들으러 예약이 되어있었지만, 이상하게 5일째 되는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당장 병원으로 와주세요'. 쎄한 느낌이 들었지만, 별생각 없이 엄마와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자궁내막암입니다. 소견서를 써드릴테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20대 초반인 내가 암이라고? 그것도 이렇게 하나도 아프지 않는데? 이제야 대학입학해서 마음을 폈는데 암이라고? 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의사의 설명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만 있던 일이 나에게 벌어지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한채 소견서와 결과서를 들고 아산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