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모리 Oct 31. 2020

배려심

독일까, 약일까

최근에 시작한 취미가 하나 있는데, 바로 볼링이다. 볼링을 치는 동호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정말이지 인간군상 너무나 다양하다는 생각을 한다. 각자의 직업, 위치, 성격, 가치관 모든 게 너무나 다양한 이런 사람들이 한 가지의 운동을 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인다는 게 신기하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다'가 내 볼링동호회 활동의 총평이다.


그중 오늘은 B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B는  볼링 경력이 좀 있는 사람이다. 이미 속해 있는 전문 클럽이 있고 친목 동호회 활동도 여러 개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대화 속에서는 본인이 얼마나 볼링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지,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가 항상 녹아있었다. 사실 좀 과한 감이 있었지만 동호회를 막 시작한 초반에는 인맥도 많고 볼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B가 굉장히 전문성이 있어 보였다. 동호회 회원 중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항상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의아함을 느낀 건 몇 번의 볼링 모임으로 그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나서였다.


B 자차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차량으로 그날 모임 나오는 사람들을 태우러 다녔다. 거리가 멀더라도 누군가 픽업을 원하면 주저 없이  사람을 태우러 운전했다.

우리는 운동  종종 뒤풀이를 가지곤 했는데 주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항상 차량을 가져오는 B 운전을 해야 했으므로 음주를 하지 않았는데, 의아한 부분은 1차로 저녁식사가 끝난  오로지 술을 마시기 위한 2 자리에도  참석했고 이후 늦은 저녁 대중교통이 끊긴 사람들을 집까지 데려다줬다. 굳이 가는 방향이 아님에도 누군가가 부탁하면 택시기사를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다.

 회원 중 한 명이 단체 카톡에 볼링공을 구매해야 할  같다는 식의 말을 하면 본인이 구해주겠다고 나섰다. 볼링공은 구매하려면 기본이 10만 원 이상 지출해야 하는 꽤나 고가인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대가 없이 구해서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이런 B의 행동이 단순히 처음 만나는 사람을 향한 일회성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엔 누군가 마음에 드는 특정인을 향한 친절이구나 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과도한 친절이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되자, 그의 행동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썩어빠진 어른이라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베풀기만 하는 이의 아름다운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친절함에는 종종 오류가 보였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방향에 살고 있는 두 인물을 모두 픽업하러 가느라 정작 모임 약속시간에는 늦어 다른 모두를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소수를 지나치게 배려하느라 정작 다수를 배려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볼링공 또한 한 두 사람에게 선물하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그에게 공을 구해달라 청탁(?)을 하기 시작했고, 그는 몇 번의 부탁을 들어주고 나서 단체 카톡방에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당히 고가의 물건을 대가 없이 구해주기란 사실 그로 써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을 그는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했고, 결국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이렇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던 이유가 뭘까? 그의 배려심이 과연 오로지 이타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미움받기 두려운 사람의 행동이라고 나름 결론 내렸다. 스스로를 향한 작은 비난이나 작은 미움도 받기 두려워 한꺼번에 들어주기 힘든 부탁들도 수락하다 보니, 오히려 전체적인 그의 평판에는 금이 가고 만다. 혹은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부탁들을 들어주고 나서 받는 칭찬, 감사에 지나치게 감화되어 전체적인 이익이나 큰 틀에서 찾을 수 있는 선의보다는 당장의 소소한 그런 칭찬들을 달게 받아먹기 바쁜 것이다. 그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근거를 몇 가지 더 찾아보았다.

첫 번째로, 자기 과시가 심하다. 그의 이력, 연봉, 볼링 실력, 인맥 등등 대화의 주제가 되는 모든 것들에서 그는 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나는 우스갯 소리로 그는 모든 방면의 전문가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의 본인의 전문분야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관련 종사자가 말하는 것에 굳이 반박하며 본인의 지식을 뽐내곤 했다. 아마 그동안에 지식 혹인 본인을 과하게 뽐내며 받았던 사람들의 찬사(혹은 그런 척)에 중독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두 번째로, 하지 않아도 될 거짓말을 한다. 순간의 평판을 위해서 이전에 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여기저기 소속감을 가지고자 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예전에 학생 시절 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하면 그는 운동선수가 되었고, 교통사고 이야기를 하면 중환자실에 입원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한 시기에 겹치게 말을 하기도 해서 그의 이야기에 신빙성을 매우 떨어뜨렸다.

세 번째로, 작은 관심이라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단체로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가지 주제로 오래 이야기 하기가 사실 어렵다. 대화의 방향이 여기저기로 빠지기 일쑤인데, B는 이미 오래전 지나간 대화에서 본인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전체 대화의 흐름에 관계없이 그것을 상기시키고 계속 동일 한 주제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사회에서 쉽게 이런 이들을 관종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관종의 기본적인 성향은 애정결핍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B의 애정결핍 정도는 보통보다 조금 더 심해 보였고, 작은 관심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다수에게 불편을 끼치고는 했다. 그의 배려 앞에서는 ‘배려’라는 의미가 퇴색되어버리고 말았다.

오지랖이 아주 수준급인 나는, 하루는 그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의 배려심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그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종종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 등을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았으나, 그는 잠시 당황할 뿐 태도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가 변할 거라고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나 스스로의 온전한 이기심에 ‘다른 이가 불편해한다는 것은 알고 있니?’하고 알리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는 현재 모임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동안 그를 관찰하면서 나역시도 그동안 배풀었던 배려심이 과연 온전히 남을 위한 것이었던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의 권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