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로다.
테스형, 틀렸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은 건 병이다. 생각이 많은데, 그걸 정리할 줄 모른다면 정말 큰 병이다. 스스로를 매우 괴롭히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있다.
깊게 생각하는 습관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순간에 나를 구원해 준다. 대부분의 흑역사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몸부터(혹은 입) 움직이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혹은 깊게 생각한다는 건 내가 신중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깊이가 내 발목을 잡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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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속을 잘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타인의 대화에 귀 기울인다. 적절한 리액션도 물론이다. 그러나 깊게 알게 되면서부터 점점 더 모를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순간에도 전혀 그렇게 보이기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감정의 간극이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다. 감정의 높낮이의 폭이 크지 않은 사람. 기쁜 일이 있어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태생이 그런 성격일 수도 있지만 훈련을 통해서 감정의 간극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를 관찰하다 보면, 역시 감정의 간극이 좁은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본인의 감정을 타인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속으로는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최대한 바깥으로 보이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일 때, 슬쩍 사실은 서운한 게 있지?라고 물었더니 그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나타나고 말았다.
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정의 내리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해 어찌 쉽게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만약 서로의 다름과 깊이를 알 수 없음에 대해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실 문제가 발생할 리 없다. 문제는 내가 그를 알고 싶어 함에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고, 그 사람이 숨기려고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사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 아주 눈치가 빠른 편이다. 그 사람이 응당 느낄 만한 감정에 대해 파악하고 대처한다. 다년간의 사회생활과 원래 위아래 치여 사는 둘째의 탁월한 동물적 감각이 있기에 가능하다. A.K.A 눈칫밥 좀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일일이 그 사람이 보여주지 않는 속내에 대해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정신적으로 피로한 작업이다.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이 스킬을 직장에서 발휘 할 때는 관심과 사랑보다는 물질적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기꺼이 피로를 감내한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일일이 속마음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 내 연인이라면 어떨까?
나는 생각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아끼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직관적인 편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속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혹은 만약 결혼해서 내 시어머니가 이런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사람이 내 상사일 경우 나는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주었었다. 이렇게 세심하게 그 속마음까지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아직 상하관계가 분명한 한국 기업문화에서 내 스킬은 까다로운 상사로부터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내 부하직원이라면?
굳이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맡은 일만 잘해 준다면 오히려 싫은 티가 팍팍 나는 사람보다 같이 일하기가 수월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 사람의 의중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것을 아는 척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때이다. 보통 이런 문제는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발생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척을 하기 때문에 이 때는 과연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가 고민이 된다. 이럴 경우는 차라리 그의 마음을 몰랐으면 싶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려울 게 없는 관계다. 비록 다소 심심할지언정.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유일한 선이 앎이라고 했건만, 내 앎은 전혀 나에게 친절하지 못하다. 고민거리만 안겨주니 앎이 과연 선인가. 옛말엔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는데, 과연 무지가 이 관계에 약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