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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Jan 07. 2022

새해엔 전화하면 좀 받읍시다

2022년 새해 습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설이었는지 추석이었는지 오랜만에 모인 외가 사촌들과 하루 종일 신나게 롯데월드에서 놀다 돌아온 어느 날 저녁이었다.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워가며 다 같이 외삼촌 댁에 들어서는 순간, 불같이 화를 내시던 친척들과 부모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며 호통을 치셨다.


어리둥절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사촌들과 별 탈 없이 잘 놀고 들어왔으니 칭찬은 아니더라도 “수고했다.” 한 마디 정도는 기대했는데 되려 혼을 내다니!


온종일 니들끼리 나가 놀면서 어쩜 전화 한 통도 주지 않을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이시던 엄마. 억울한 마음에 할아버지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화내는 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정신없어도 너는 그럼 안 되는 거였어.” 옆에서 한 마디 거드시던 이모.


당황스러웠다. 애초에 우리들끼리   곳까지 지하철 타고 가도록 허락했으면 우릴 믿는  아니었나. 핸드폰도 삐삐도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무엇보다 바깥에 나가 있으면 주기적으로 전화를 해서 어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개념 따윈 없던   언저리의 나이였다.


물론 어른들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당부했을 수도 있다. 도착하면 도착했다고 꼭 전화하라고. 어린이 유괴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던 90년대였다. 하지만 잔뜩 들떠 놀러 나가던 아이들에게 그 말이 제대로 들렸을 리 만무했다. ‘길 건널 때 차 조심해라.’ 정도의 늘 하는 흔한 잔소리로 흘려듣고 말았겠지.


그때만 해도 전화를 스스로 알아서  못하는  나이가 어려서인  알았다. 그러나  가면서 부모님이 아닌 남자 친구와도 전화 때문에 점점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깨달았다. 내겐 전화를 먼저 거는 DNA 없다는 것을. 하필 동생도 나와 비슷한 처지라 심증은 확신이 되었다.


연애할 때 집에만 가면 연락 불통이 되는 나를 두고 남편은 밀당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부모님은 일찌감치 포기하셨다. 이젠 딸들이 먼저 전화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신다. 그래도 가끔은 서운함을 폭풍처럼 토해내곤 하신다. 부재중 전화가 떠 있어도 보고 그냥 넘기는 니들이 딸이 맞긴 하냐고. 아프시고 나서는 더 심해지셨다. 위급한 마지막 순간에 전화해도 모를 년들이라고까지.


어제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운동 중이라 끝나면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드리지 못했다. 아빠와는 언제 통화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작년 언젠가 아빠에게 전화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주구장창 하다가 크게 마음먹고 전화드린 적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시부모님 역시 포기하셨다. 한국에 있을 땐 일하느라 바빠서 그러려니 하셨고 홍콩에 있을 땐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지나 보다 하신다. 좋으신 분들이다. 며느리의 단점도 보듬어 주시는. 그런데 뜻밖에도 엄마가 고생이다. 쌓이고 쌓였을 내 흉을 그렇게나 우리 엄마에게 보신다고 한다.


작년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카메라가  켜져 일단 끄고 다시 걸으려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시던 아빠. 서로가 동시에 거는 바람에   만에야 제대로 연결이 되었다. 그만큼  전화를 오래 기다리셨나 보다.


그래 봤자 매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하나마나  말들을 쥐어 짜내며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라도 대신 말을  주면 좋을 텐데 오랜만에 마주한 할아버지에게 짧은 인사만 던지고 방으로 도망가 버리는 녀석.


건강히 잘 지내라,
XX한테도 안부 전하고.


 이런다. 마지막 인사를 했으면 어른이 먼저 끊어야지, 내가 끊을 때까지 화면 속에서 손을 흔드는 아빠. 아빠는  화면에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전화를 끊는다. 이런 아빠를 이겨본 적이   번도 없다. 그게 사랑한다는   대신 아빠가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라는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습관이 팔자라고 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습관을 하나 결심해 본다. 오는 전화를 다 받진 못하더라도 자주 먼저 전화드리겠다고. 누구에겐 밥 먹듯 쉬운 일이겠지만 내겐 왜 그리도 어려운지. 언제나 생각만 하다 끝나 버리는 일이었다.


우선 알람 설정을 해두겠다. 요일과 시간도 정해야지. 알람이 울리면 어디에 있더라도,  하고 있더라도 통화 버튼부터 누를 거다. 처음엔 놀라시겠지? 그러나  같은 시간에 전화를 드리면  익숙해지실 거다. 그러다 정말 바쁜 일로 한두  건너뛴다면 오히려  걱정하시려나. 쓸데없는 생각이 습관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설친다. @이백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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