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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Jan 05. 2022

엄마, 돼지 되고 싶어?

2022년 새해 다짐

오랜만에 입어  청바지의 허벅지 부분이 유난히 붙는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기분 탓이려니 했다. 가끔 사진 찍을 때마다 두 턱이 되는  전날의 붓기 탓이려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확인한 충격적인 몸무게. 홍콩에서 체중 잰 건 처음이었다. 홍콩과 한국의 중력은 다르기라도 한 걸까? 마지막으로 쟀던 2년 전 보다 몇 킬로나 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살아가면서 굳이 내 몸무게를 킬로그램으로 수치화한 숫자까진 알고 싶진 않았다. 애써 모른 척 지내왔다. 그러나 그날 이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두 자리의 숫자.


도저히  되겠더라. 새해가 오기    킬로만이라도  보고자 탄수화물을 줄이고 샐러드와 두부로 식단을 채웠다. 메뉴는 바꿨지만 양까지 줄일 자신은 없었다.  앞에 수북이 쌓인 풀숲을 보고 남편은 말했다. 코끼리도 풀만 먹는  잊지 말라고.


그리고는 아이와 내기를 했다. 마침 3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된 아이.  기간 동안 아이는  2센티미터 크기,   몸무게 2킬로 줄이는 걸로. 방학이 끝나는 일요일 아침까지 성공하는 사람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주는 내기였다.


엄마, 돼지 되고 싶어?”


아이에게 부탁도 하나 했다. 엄마가 밥 먹고 또 무언가 먹는 걸 찾는다면 이렇게 크게 외쳐 달라고. 모욕감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려는 나름 특단의 조치였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있던 연말 저녁 술자리 약속까지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2,3일간 닭 가슴살만 먹다가 마주한 해물파전, 매운탕과 볶음밥, 라면에 정신 줄 놓고 폭식하다 다시 이틀은 식단 하기를 반복. 중간에 체중을 재진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슬프게도 늘었으면 늘었지 조금도 빠지진 않았을 거라는 걸.


마침내 그날이 왔다.  빼는 것만큼  크는 것도 어려웠을  같은데 무슨 자신감인지 빨리 재자고 재촉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일주일만  연장하자고 졸랐다. 내기에서 지는 것보다    눈으로 충격적인 숫자를 확인한다면 이제는 정말  나갈  같았기에.


사흘 남았다.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단호박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 나란 녀석. 저녁을 건너뛰었는데도 얼마나 많은 양을 먹었는지 밤 아홉 시에도 배가 꺼지지 않는다.


허릿살을 꼬집으며 후회를 했다. 내일은 반드시 정량만 먹으리라. 배가 부를  계획해 보는 다이어트는 세상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하루의 공복을 참지 못하는  나란 인간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엔 다들 어떻게 견딘 걸까?


다이어트. 마음을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있는 일인  알았다. 지난 주만 해도 그랬다. 일주일만  주어진다면 단연코   있을  알았지 사흘 남기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배가 불러서 괴로워할  누가 알았으리오.


'단 삼일, 삼일 동안만이라도 굳게 마음먹고 감량에 꼭 성공하리라.'와 같은 바람직한 새해 첫 다짐으로 멋지게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어렵지 싶다. 나의 몸무게는 철옹성 같다. 줌바로 치고 스트레칭으로 공격해도 꿈적도 않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입에도 올리지 않는 퍽 양심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킬 수 있는 쉬운 길만 골라가는 비겁한 얌생이였다.


이 와중에 퇴근길 양손 가득 빵을 사 온 남편은 또 얼마나 고마운지. 기가 막힌 타이밍. 해맑은 얼굴로 맛있는 걸로만 골라 왔다며 얼굴 옆으로 빵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한다. 어쩜 우린 이렇게나 잘 맞는지 천생연분이다.


@이백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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