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다짐
오랜만에 입어 본 청바지의 허벅지 부분이 유난히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기분 탓이려니 했다. 가끔 사진 찍을 때마다 두 턱이 되는 건 전날의 붓기 탓이려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확인한 충격적인 몸무게. 홍콩에서 체중 잰 건 처음이었다. 홍콩과 한국의 중력은 다르기라도 한 걸까? 마지막으로 쟀던 2년 전 보다 몇 킬로나 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살아가면서 굳이 내 몸무게를 킬로그램으로 수치화한 숫자까진 알고 싶진 않았다. 애써 모른 척 지내왔다. 그러나 그날 이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두 자리의 숫자.
도저히 안 되겠더라. 새해가 오기 전 단 몇 킬로만이라도 빼 보고자 탄수화물을 줄이고 샐러드와 두부로 식단을 채웠다. 메뉴는 바꿨지만 양까지 줄일 자신은 없었다. 내 앞에 수북이 쌓인 풀숲을 보고 남편은 말했다. 코끼리도 풀만 먹는 걸 잊지 말라고.
그리고는 아이와 내기를 했다. 마침 3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된 아이. 그 기간 동안 아이는 키 2센티미터 크기, 난 몸무게 2킬로 줄이는 걸로. 방학이 끝나는 일요일 아침까지 성공하는 사람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주는 내기였다.
“엄마, 돼지 되고 싶어?”
아이에게 부탁도 하나 했다. 엄마가 밥 먹고 또 무언가 먹는 걸 찾는다면 이렇게 크게 외쳐 달라고. 모욕감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려는 나름 특단의 조치였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있던 연말 저녁 술자리 약속까지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2,3일간 닭 가슴살만 먹다가 마주한 해물파전, 매운탕과 볶음밥, 라면에 정신 줄 놓고 폭식하다 다시 이틀은 식단 하기를 반복. 중간에 체중을 재진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슬프게도 늘었으면 늘었지 조금도 빠지진 않았을 거라는 걸.
마침내 그날이 왔다. 살 빼는 것만큼 키 크는 것도 어려웠을 거 같은데 무슨 자신감인지 빨리 재자고 재촉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일주일만 더 연장하자고 졸랐다. 내기에서 지는 것보다 또 한 번 눈으로 충격적인 숫자를 확인한다면 이제는 정말 막 나갈 것 같았기에.
사흘 남았다.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단호박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 나란 녀석. 저녁을 건너뛰었는데도 얼마나 많은 양을 먹었는지 밤 아홉 시에도 배가 꺼지지 않는다.
허릿살을 꼬집으며 후회를 했다. 내일은 반드시 정량만 먹으리라. 배가 부를 때 계획해 보는 다이어트는 세상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단 하루의 공복을 참지 못하는 게 나란 인간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엔 다들 어떻게 견딘 걸까?
다이어트.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지난 주만 해도 그랬다. 일주일만 더 주어진다면 단연코 뺄 수 있을 줄 알았지 사흘 남기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배가 불러서 괴로워할 줄 누가 알았으리오.
'단 삼일, 삼일 동안만이라도 굳게 마음먹고 감량에 꼭 성공하리라.'와 같은 바람직한 새해 첫 다짐으로 멋지게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어렵지 싶다. 나의 몸무게는 철옹성 같다. 줌바로 치고 스트레칭으로 공격해도 꿈적도 않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입에도 올리지 않는 퍽 양심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킬 수 있는 쉬운 길만 골라가는 비겁한 얌생이였다.
이 와중에 퇴근길 양손 가득 빵을 사 온 남편은 또 얼마나 고마운지. 기가 막힌 타이밍. 해맑은 얼굴로 맛있는 걸로만 골라 왔다며 얼굴 옆으로 빵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한다. 어쩜 우린 이렇게나 잘 맞는지 천생연분이다.
@이백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