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을 읽다 보니 내가 책을 출간했을 때가 떠올랐다.
생존을 위한 글쓰기는 피할 수 없는, 도망갈 수 없는, 반드시 끝을 내야 하는 최강수 배수의 진이 분명했다.
지금 돌아보면 글을 차분하게 쓸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완성했던 것 같다. 창작의 고통...
마치 미쳐야 할 수 있는 결혼과 같다고 해야 할까?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처음 책을 써야겠다는 다짐은 퇴사를 위한 창업 준비물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 회사는 더는 못 다니겠고, 그렇자니 때려치우긴 억울하고 두렵고 불안했다. 브랜딩에 관심이 있던 차에 펄스널 브랜딩과 책을 엮어 주는 출판사를 우연히 알게 되어 조심스럽게 설명회를 들으러 갔다. 나처럼 책을 쓰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 십여 명 정도 모여있었다. 그 출판사 대표님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 내가 딱 하고 싶었던 거네? 서둘러 개인면담을 진행하고,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그때 나름 고민도 해보았지만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브레이크가 고장 났으니 달리는 차 안에서 죽을 것 같아 무서우니 그것이 고속도로이건 자갈밭이던 차 밖으로 뛰어내고 싶기만 한 심정이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는 리스크가 있을 법한 상태였지만 그래서 더 대범했던것 같다.
여성 정치가가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를 본적이 있다. 극 중 여 주인공이 자서전 출간 후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3개월 대필에 천만 원" 이라며 솔직하게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는데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내심 찔렸던 것 같다.. 헐 대필이 더 나았네?!ㅋㅋ라며 씁쓸한 웃음을 었던 기억이 난다. 계약과 동시에 책을 쓰는 코칭을 받아야 했기에 적지 않은 돈도 냈기 때문이다. 창업 밑천이라 여기며 퇴사를 목표로 글을 쓰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
내 직업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시장을 분석하고 어떤 주제의 책을 쓸지부터 출판사와 논의했다. 다음으로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목차를 적어오라고 하는 것이다. 석사 논문을 쓴 가닥이 있어서, 뭐 이쯤이야 생각했는데 이건 커다란 착각이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은 마치 안갯속에서 잡히지 않는 물방울과 같았다. 분명 나만의 소신과 생각은 있는 거 같은데, 말로는 어찌어찌 표현을 해보겠는데, 글로는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막막했다. 말로는 물론 문장에 주어 목적어 서술어 도 없었고, 마치 구어체처럼 끝을 흐렸다. 희미한 내가 있은데 누가 나 좀 알아달라고, 나 좀 봐달라고 외치지만 소리 나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마음만 애타는 상태였다.
그때부터 마구잡이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의 꽃을 위한 서시에 나오는 꽃처럼 내 안에 뒤죽박죽 안개처럼 떠다니는 그 무엇을 표현할만한 문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매일 퇴근하자마자 2시간씩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문장을 캐기 시작했다.
(사실 이 경험으로 누군가가 시간이 없어서 뭘 못해요 하면 그것은 다 핑계고 할 마음이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회사도 다니고 육아도 하고 책도 쓴 경험이 있는 꼰대가 되어버렸지만...)
글 플랫폼도 정기 구독하면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노트북 살 돈도 아껴서 블루투스 키보드로 손바닥만 한 핸드폰으로 글을 썼다.
알게 된 사실은 이런 생각은 나만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같은 고민으로 앞선 연구를 하신 분들도 많았다는 것과 '아 그래 내 말이 이 말이야!!' 하면서 무릎을 치는 책과 문장들도 많이 발견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노트에 적어놓은 기억에 남는 문장은 언젠간 꼭 쓸대가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코칭을 받는데 그때마다 목차에 해당하는 글쓰기를 A4용지 2장 페이지 정도 하는 것이 숙제였다. 처음엔 한 목차 쓰기도 어려웠는데 한 3개월 정도 하고 보니 한주에 목차 3ㅡ4개까지도 작성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 에필로그를 쓸 때는 빨간색 첨삭 내용이 굉장히 많았다면, 마지막 프롤로그 작성할 때는 오타 말고는 첨삭할 거리가 없었다.
오... 배성은!!!
퇴고를 하면서 스스로 기특해하기도 했고, 와 진짜 내용 대박 좋다 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판매되는 수량을 보면 이걸 나만 아는 것 같아서 좀 아쉽긴 하다(^^;;). 그 이후로는 책과도 친해지고 괜찮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도 생긴 것 같다. 작가라는 페르소나도 생기고, 회사에서는 원페이지 보고서나 제안서는 가뿐하게 써지니 상사 분들에게 인정받기도 했다. 글쓰기가 수월해지니 삶의 조그만 변화가 생겼다.
쓰기의 말들을 읽으면서 내가 고민하고 고생했던 것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는 것이며, 그 밖의 지적 감성들을 자극시키는 것 같아서 또 쓰고 싶어 졌다. 참 고생 많았다며 과거의 나를 다독거려주는 것 같아서 울컥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은 나를 언어로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걸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책만 내면 모든 게 잘될 줄 알았는데, 이것 또한 시작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은 언제 나오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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