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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사 B Dec 04. 2021

85년생 김지영

슬픈예감은 틀리지않는다

김애란 님의 비행운이란 소설을 읽고 있다. 트레바리 씀 모임의 마지막 책이다. 사실 리더의 추천이라 별생각 없이 읽게 되었다. 매순간 안타깝고 구슬픈 이야기가 가득한 단편소설집이었다. 비행운도 행운이 아니라는 뜻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문장이 너무 좋다며 모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 독후감은 소설을 써보기로 호기롭게 제안해보았다. 설을 읽다가 갑자기 필이 딱 와서 몇분만에 써내려간 이야기다.나름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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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어디쯤에서 만나기로 한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슬픈 눈으로 약속시간 30분 후에 도착했다. 슬픈 얼굴을 알아챈 지영은 그에게 묻는다.

무슨 일 있어?

.......

왜 그래?

부모님이 아셨어.

어?......


지영의 부모님은 서울에 자그마한 카센터를 운영하신다. 그는 그의 부모님에게 지영의 존재와 그녀의 부모님의 직업, 상황 등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진 아들을 둔 그의 부모님은 온몸으로 둘의 관계를 반대했다. 사귀기로 한 1년쯤 되던 어느 날, 부모님의 반대를 수용한 그는 지영과 이별을 했었다. 20대 후반이지만 서로가 첫사랑인 둘은 이런 상황에 덜컥 헤어지고는 철부지처럼 이별에도 서툴렀다. 그는 싸이월드에 매일 일기를 써댔다. 부모에 대한 가득한 불만을 세상을 향하는 반항으로, 본인의 이별이 얼마나 힘든지... 세상 이별 처음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갈겨댔다. 그때 대학원 생이었던 지영은 매일 그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면서 가슴 아파했고 그가 이만큼 자신을 사랑했노라고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별을 선택한 건 그였다. 그를 잊기 위해 수업을 제외한 시간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저녁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몸이 피곤해서 잠이 들면 꿈에서도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자다 깨서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남자 저 남자도 만나보아도 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참 야속하다 생각했다. 자신의 부모를 탓하기까지 했다.

7개월쯤 지났을까... 그러던 어느 날, 괜찮은 척 우연히 지영은 술김에 그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 그냥 밥이나 먹을까? 하고 전혀 쿨하지 않은 마음이지만 쿨한 척 전화를 걸어 일요일에 만나기로 한다.

어 오늘 일요일인데 너 성당 가야 하지 않아?

정이 떨어져서 헤어진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 애틋함은 언제고 다시 피어올랐다. 헤어지려 몸부림치던 시간은 그냥 쉼표와 같았다. 그냥 친구인척, 아는 오빠 동생 사이쯤으로 만나는 것처럼 척하고 있지만, 몸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듯 다시 만난다는 건 헤어진 이유를 극복해보겠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한다.

지방 파견직으로 간 그 였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지영의 옆에 있었다. 성당에 다니는 지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는 영세반에 등록해서 매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영은 다시 만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본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한 증표를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말했다.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하면 자신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나름의 영악한 계획이었다. 지고지순한 그는 그것을 만들어 지영에게 선물했다. 두 손바닥 만한 무지 노트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적고, 그 일이 얼마나 그에게 소중하고 그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세레나데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학창 시절 좋아하는 사람에게 쓴다는 러브장 같았다. 20대 후반에 이런 선물을 받다니... 웃기기도 했지만 그만큼 순수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마음을 쓰며 착실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엄마가 그의 가방에서 어떤 쿠폰을 발견하게 된다. 영세반에서 매일 성당에 가면 도장을 찍어주는 쿠폰이었다. 물론 그의 엄마는 안 하던 짓을 하는 아들이 낯설었고, 여자의 촉으로 지영과의 만남을 예측하였다.


두 부모 내외는 지영을 왜 만나면 안 되는지, 그들 가족의 '결'과 지영 가족의 '결'이 다르다며, 너는 다른 여자를 만나야 한다며, 그들의 아들을 앉혀놓고 한 시간 이상 훈계를 했다고 전했다. 그 훈계를 듣고 나타난 그는 슬픈 눈으로 지영을 만나러 왔다.

극복하고자 했는데, 매일 부모를 위한 기도를 하며, 그의 부모를 생각해 오던 지영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자기 아들을 그만 만나 달라는 그의 엄마의 문자에 돈다발이라도 던져주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한 지영이었다. 그렇지만 사랑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를 따질 겨를일 없었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 꺼억꺼억 우는 그를 다독이면서, 슬픔에 빠진 그 앞에서 나까지 약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멀쩡한 척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영의 머릿속에는 일전에 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렇게 남자 부모가 반대할 경우 여자가 알아서 떠나 주는 게 고마운 거라고...

내가 이제 그를 위할 차례인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무렇지 않게 그를 다독이며 청계천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걷고 걷다가 평소에 그가 먹고 싶다 했던 멕시칸 음식을 먹으러 간다. 다음날 건강검진을 예약한 지영이지만 그날따라 알코올 음료를 시킨다. 스트레스받을 때는 토마토 칠리소스와 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로 만든 카니타스가 가득 들어있는 브리또를 와구와구 먹는 거라며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낸다.

머릿속엔 친구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그에게 도움이 되는 건 그를 떠나는 거라고....

데이트를 끝내고 서울 근교 지방에서 근무하는 그의 오피스텔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겠노라며 지영은 자리를 피했다. 아름다운 이별이 없다는 것을 지영은 이미 알아버렸다. 지영은 그 길로 반대방향으로 갔다. 울려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는 건 다만 전화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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