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빨간색 표지가 영롱하게 참 예뻐요. 책 안의 글들은 더 영롱합니다. 10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지만 한 글자도 허투루 볼 수 없어 천천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었어요. 정말 좋았어요. 김영하 작가님이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의 책으로 추천하신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 참 많아요. 여러 번 다시 읽어보게 되는 문장도 많았고요.(한 번에 이해가 안돼서 그랬던 문장도 있고 엄청 좋아서 눈에 콕 박고 싶어서 그랬던 문장도 있었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같이 읽고 있었어요. 책 3권이 서로 연결되며 물음표로 남은 문장이 다른 책에서 발견한 내용에서 번쩍하고 ‘아 그 책의 그 문장이 이런 것을 말하는 거였구나’하며 답을 찾기도 했어요. 어떤 문장을 예를 들어 쓰고 싶은데 그 순간 깨달음에만 집중하고 글을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아서 써놓지를 않았네요. 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다니...
“p.78 우리는 언어의 낯섦에서 다른 정신의 낯섦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범주와는 다른 범주, 행위와 관습을 서술하는 다른 방식, 자신과 타인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다른 방식이 존재함을 보고 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삶의 운율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언어를 바꾸면 삶은 다른 소리와 맛을 냅니다. 하나의 경험이 주는 분위기와 필체와 속도가 달라지지요. 세상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흥미로웠어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을 이렇게 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지 않았었거든요. 언어를 배우면 다른 나라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여행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고 원서를 읽을 수 있으니 그 작가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른 정신의 낯섦을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아, 이거구나 싶었지요.
새빨간 철학책을 읽고 제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였습니다. 조금 생뚱맞은 것 같죠. 페터 비에리는 언어를 습득하는 단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이렇게 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다른 나라 언어뿐 아니라 내가 늘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언어적 교양의 최고 단계, 저의 한국어는 몇 단계까지 가있을까요? 말을 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어느 과정에서 멈춰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했습니다. 철학은 참 재밌는 분야 같아요. 저는 어떤 분야에서든 계속해서 공부하고 쌓아 가다 보면 결국엔 철학을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엔 ‘철학’인 거죠. 그래서 철학은 매력적이면서도 참 어려운가 봐요. 이 책은 몇 번 더 천천히 읽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부부 제 삶에 적용하고 싶네요.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글을 남겨 볼 생각입니다. 횟수를 더해 읽을수록 제 생각이 어떤 것을 붙잡고 읽고 있는지 또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고 싶어서요.
p.79 자신이 선택한 언어의 틀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언어적 교양의 최고 단계입니다.
p.80 교양이란 이렇듯 익숙한 개념적 경로에서 뒤로 물러나 언어 습득의 두 번째 단계에 서서 우리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육의 과정에서 전형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낯설어지고 후에 그 믿음이 투명성을 얻고, 그다음 비로소 자기 것이 되어 다시금 친숙해지는 것이지요.
p.95 자신이 쓰는 언어가 독서를 통해 풍부해지고 차별화되고 독립적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교양의 차원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에 관해 쓰인 글들을 읽고 고찰한 후 그것이 자신의 사고와 행위의 조직 속에 골고루 파고들어야 그 글이 비로소 교양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p.97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의 문법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더 큰 문맥에서 이해하고 나면 그 문화가 복수의 가능성 가운데 하나임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능력과 투명성이 확대될수록 내적 자유도 확대되어 맹목적으로 각인되었던 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