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고자 했으나 가지 못한 그곳, 브레멘은 어디일까요?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를 펼치면 친절하게도 브레멘으로 가는 이정표가 바로 나옵니다.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큰길로 500m 직진. 심지어 아주 가깝습니다. 걸어서도 금방 갈 거리예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림책 속의 주인공들은 직진으로 뻥 뚫려있는,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그 길의 목적지, 브레멘을 가지 못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나이가 많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고, 인상이 험상궂고(과거를 의심해보게 되는), 장사할 가게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늘 열심히 일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열심히 살지 않아 먹고살 길이 힘들어진 도둑들과 같은 신세가 됩니다. 내 앞에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느라 조금만 더 시야를 넓히면 보였을 브레멘으로 가는 이정표를 보지 못했습니다. 브레멘은 그들과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또 늘 그렇듯 이리치고 저리치며 전철을 타고, 산동네 계단을 오르고, 투벅투벅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오늘치만큼의 피로를 어깨에 올리고 브레멘이 아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림책이지만 우리 주변의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동물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왜 저 이정표도 못 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일만 하냐고요!! 하고요.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펐습니다. 왜 열심히 살아도 브레멘에 가지 못할까? 젊어서는 자식들 키우니라 옆도 못 보고 일하다 늙으니 본인의 노후를 즐길 경제적 여유도 없어 또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많은 그림이 스치며 많이 슬펐습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나라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복지가 좋은 나라에서도 이런 그림책을 읽고 저같이 슬퍼질까요? 복지가 좋은 나라는(또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는 있겠지만요) 여유롭게 일하고 더 여유로운 노년을 즐깁니다. 나라는 어디까지 개인을 책임져줘야 할까요? 지금 우리 세대는 브레멘에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브레멘에 가까워지기라도 했을까요? 저는 브레멘에 살고 있는 걸까요? 저 또한 그림책 속 동물들처럼 가까이에 있는 이정표도 못 보고 하루하루에서 동동거리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지금의 저와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