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oodchuck, 미국 Tongue Twister
"나 따라 해봐. 세종대왕릉, 영녕전, 양녕대군."
"나 따라 해봐. 세종대왕릉, 영녕전, 양녕대군."
따라 해보라는 내 말에 '나 따라 해 봐'까지 따라 하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발음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Z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면 나에겐 '이것'이 있지.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다."
Z는 예상대로 버벅거렸지만 몇 번인가 염불처럼 외더니 금세 흠 잡을 데 없이 해냈다.
입에 모터 단 속도까지는 아니었어도 혀가 날아다녔다.
발음도 발음인데 그 어려운 걸 금방 외우는 것도 대단했다.
Z는 역으로 내게 미국 Tongue Twister를 알려주고 연습시켰다.
ㅡHow much wood would a woodchuck chuck if a woodchuck could chuck wood?
ㅡHe would chuck, he would, as much as he could, and chuck as much wood as a woodchuck would if a woodchuck could chuck wood.
* woodchuck : 작고 털 많은 동물. 다람쥣과.
* chuck : 던지다, (영영사전) to throw or toss
우드 우드- 하는 맛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끝까지 가기조차 힘들었다. 는 핑계고......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고,
치킨 공장 공장장은 Z입니다."
입니다ㅡ 하면서 살짝 내려간 말꼬리, 묘하게 비장한 음성과 리듬에 웃음이 터졌다.
"치킨 공장 공장장?"
반사적으로 물었다.
Z의 말엔 다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나는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퇴근 후 고양이 쉼터에 봉사를 다녔다. 직장 때문에 서울로 상경한 뒤에는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별한 날 고향에 들렀을 때 닭가슴살을 잔뜩 삶아 봉사를 가곤 했다.
"나도 봉사활동 같이 가도 될까. 고양이 친구들 만나고 싶어."
Z는 나와 같이 봉사활동을 가고 싶다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도 있고, 키웠던 친구도 있고, 그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지만, 내가 매주 봉사활동을 다니던 1년 동안 ‘고생한다’고 말하면서도 ‘같이 가자’고 말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내가 교통사고로 배변 기능을 상실한 고양이를 자리에 눕히고 방광을 압박해 배뇨를 시키고, 뒷다리가 으스러져 꺾인채로 앞다리로만 바닥을 기어 다니는 고양이가 여기저기 흘려놓은 배설물을 깨끗하게 치울 때, 오랜 보호소 생활과 병치레로 특별한 병명없이 얼굴의 온 구멍에서 눈물, 콧물, 침을 계속 흘리는 고양이의 얼굴을 따뜻한 물 묻힌 가재수건으로 닦아주고 아픈 아이들에게 처방식과 약을 먹이는 동안, 누군가 장난감으로 아이들과 놀아 주기라도 했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는 지금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3층, 4층을 왔다갔다 하며 수십 개의 화장실 치우기, 식기류 설거지, 청소와 같은 기본적인 일들만 하기에도 벅차 마음만큼 놀아주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하고 무릎에서 떼어놓고 나와 죄책감을 비롯한 여러 감정들에 짓눌린 채 귀로에 올랐던 무수한 토요일 새벽이 떠올랐다.
2024년 크리스마스 때 Z와 처음으로 같이 고향집에 갔다. 그리고 하루 시간을 내어 함께 봉사활동을 갔다. 우리는 고양이들에게 간식으로 주려고 닭가슴살 4kg를 두 번에 걸쳐 삶고, 엄마까지 셋이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썰어 통에 담는 작업을 했는데, Z는 그 기억을 떠올리고는 '치킨 공장 공장장은 Z 공장장입니다.'라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날 이후 '치킨 공장 열자!'는 쉼터 고양이들을 보러 가자는 암호가 되었다.
Z는 비위가 약해 KF94 마스크를 쓰고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여든 마리 정도 되는 고양이들의 똥오줌을 치웠고, 장난감을 흔들어 고양이들이 사냥 본능에 미쳐 날뛰게 만들었다.
“나 아이디어 있어.”
세 번째로 같이 봉사활동을 갔다 온 후 어느 날 Z가 말했다.
“봉사활동에 여러 종류가 있잖아. 똥 치우고 놀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봉사활동 만들어 보는거 어때? 쉼터 고양이들을 홍보하는거야."
Z가 들려준 최초의 아이디어는 모종의 이유로 반려했지만, 그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우리는 지역의 대학생들과 쉼터를 연계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대학생들은 대외활동(마케팅) ‘경험'이 필요하고, 쉼터는 이런 저런 사연이 잏는 고양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고 반려가족을 기다린다는 '홍보'가 필요하니 서로 윈윈이 아닐까,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몰라도 건의해 보기로 했다.
각자 생업이 있는 상태에서 모인 소수의 봉사자들로 근근이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인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후원금은 턱없이 적고, 병원비 등 빚은 많고, 입양률은 낮고....위태롭지만 역부족인 현실을 절감하며 걱정하던 나를 읽고 Z는 나름대로 돌파구를 궁리했다. 그 덕분에 나도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2년을 만나는 동안 Z는 종종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 내게 도움을 주거나 나를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했던 경험들에 뿌듯해했다.
Z는 내가 느끼는 어떤 불편한 감정에 같이 동요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유를 파악하려고 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시도와 계산이 나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자주 감정에 빠져 길을 헤매고 전략과 전술 없이 전장에 나가 패잔병도 되고 야전병원에서 분투하는 나와 대척점에 있었지만 그래서 더 귀중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파악 중입니다."
"제안 하나 드릴게."
Z의 진지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사무적인 말과 어울리지 않게도, Z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