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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용 Oct 27. 2020

크리스마스는 이곳에서 보내게 해 드릴게요

부부를 매료시킨 한 마디

'그래, 두 집 살림을 하자'


도시살이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드디어 우리는 결심했다. 집을 찾으면서 동시에 주거의 형태도 결정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니 그 집에서 누리는 생활이 비로소 그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들이 그리는 집을 흔히 세컨 하우스나 주말주택이라고 불렀다.   

여러 집을 보다가 어느 날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한국에는 오디엠, 오두막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조립식 주택이었다. 평당 단가를 따지자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크기보다 완성도가 중요했던 우리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주말에만 올 거니까 집이 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펜션이 아닌 우리 집이니까 잘 지어진 주택이어야 했다. 위치도 중요했다. 오며 가며 지치지 않게 자차로는 너무 멀지 않지만, 도심에서는 적당히 멀어졌으면 했다. 그렇다. 늘 그랬듯 바라는 게 참 많았다.



'때로 돌아서 가는 인생도'


눈여겨본 오디엠 브랜드의 샘플 하우스를 보려면 양평까지 가야 했다. 그곳에 타이니 하우스로 이루어진 작은 타운이 세워진다고 했다. '일단 집을 보자'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다. 가는 길은 눈에 익은 코스였다. 문호리 강변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리버마켓을 종종 방문했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북한강변을 따라 난 도로는 무척 예뻤다. 늘상 막히는 구간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잘 뚫렸다. 거의 다 와서는 길을 헷갈린 남편이 들어서야 할 ic를 놓쳐서 살짝 돌아야 했다. 그런데 돌아가며 만난 구비 길이 또 무척 아름다웠다. 고개고개 길을 따라 생각이 이어졌다. '때로 이렇게 돌아서 가는 길도 좋을 수 있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둘러온 그 길이 소문난 단풍 명소이자 드라이브 코스랬다.


드디어 도착한 곳에는 주택을 관리하는 사무실과 두 채의 집이 있었다. 집 뒤로는 작은 계곡이 있었고 돌계단을 통해 내려갈 수도 있었다. 비스듬하게 마주 보는 두 집을 향해 걸었다. 실내에 들어서자 자작나무 향이 훅 끼쳤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평상이,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다. 처음엔 '아, 작다' 싶었다. 그런데 있을 건 다 있었다. 샤워부스와 분리된 건식 화장실도, 뒤로 한 뼘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주방도 참 좋았다. 꿈에 그리던 작지만 완벽한 집.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불평 거리가 늘어날지 몰라도 집의 첫인상은 부부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집을 나서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마당이 그제야 눈에 담겼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의 잔디 정원에는 야생화와 나지막한 나무들이 볕을 받으며 옹기종기 서있었다. 이름은 다 알지 못해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심고 가꾼 것만은 분명했다. 수채화를 푼 것처럼 다양한 색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사진을 찍듯 담았다.

고양이가 바라볼 풍경 미리 감상 중
뒤로 작은 창문이 나 있는 작은 주방
몇 걸음, 돌계단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계곡


'우리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


회색 롱 타일로 반듯하게 지어진 사무실로 들어섰다. 살짝 수줍어 보이는 인상의 직원분이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타이니 하우스로 이루어진 타운이 자꾸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을까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다니. 그런데 심지어 우리가 늦은 거였나 보다. 남은 건 단 두 집이었다.


계곡과 접한 곳은 아니었지만 네모 반듯한 모양에 계곡 진입로가 가까운 땅을 보았다. 뒤는 너른 깨밭이었다. 볕이 잘 들면서 낮고 오목한 지형은 산이 감싸 쥔 형세였다. 집은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트레일러에 실려 이곳까지 운반된다고 했다. 집을 공장에서 만드는 시대라니. 집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매매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마을

'미리 꿈꿔 보는 크리스마스'


"그럼 언제쯤 입주할 수 있을까요?" 우리 부부의 물음에 직원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스는 이곳에서 지내게 해 드릴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이 될 시점이었다. 꼬마전구가 알알이 달린 작은 집과 모닥불과 영화, 케이크, 통닭구이 같은 것이 스치듯 머릿속을 지났다. 크리스마스엔 고양이들도 데려오자.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볼 완벽한 창문도 있을 테니까. 단풍이 오기도 전에 겨울이 소복이 내려앉은 계절을 꿈꾸었다.


차를 타자마자 남편이 말했다. "나는 마음에 들어!" "여기로 하고 싶어!" 집을 보고 나면 종종 듣는 말이었지만 오늘 밤만은 나도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흐르던 늦여름의 어느 날, 드디어 우리는 여덟 평짜리 집을 샀다.    

    

우리집이 올라올 자리. 뒤로 깻잎이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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