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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neaufgabe Aug 13. 2022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처음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을 들었던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개봉했던 2015 봄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학기를 보내고 있었고 해를 보러 가는 동안이라는 제목의 조금  소설을 쓰고 있었다.  소설이 어느  연말에서 1 1일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해 봄은 어딘가 추웠던  같은 계절감을 떠올리게 하는데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본 건 그로부터 몇년 뒤였다. 개봉 당시 영화의 전당에서 작품을 본 선생님으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언젠가 더 좋은 날에 더욱 적절하며 불가피한 날에 그를 만나야 하리라는 믿음이자 예감을 갖게 됐다. 지금 당장 보러 가자면 보러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보러 가기를 기약 없이 미뤄두었다.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만나기를 미뤄둔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 이미 죽어 있거나 아직 살아 있는데 내가 이런 식으로 그들과의 만남을 미루는 까닭은 아마도 그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지나칠 정도로 위험하게 좋을 것이기 때문,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 나는 틀림없이 그들을 갖고 싶어진다.


결국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본 건 그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였다.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고 그래서 산다는 일에 좀처럼 정을 붙이기 어려웠으며 그렇게 불면증과 과수면증을 오가며 지내던 시기, 마치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평일 오후의 해 질 무렵 같은 시기였던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자주 이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느낌은 언어의 형태를 띤 생각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나의 의식이 능동적인 태도로 어떤 추상적인 대상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구조를 갖추어가는 생각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약간 해체된 상태였고 다르게 말하자면 일종의 무의미였다.


그러다 문득 무엇이 계기인지는 모르게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책도 보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고 딱히 글도 쓰지 않으면서 지내던 그 무렵의 어느 순간에 나는 갑자기 왓챠를 통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찾아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모처럼 생의 활력이라고 할 만한 것에 휩싸여서 곧바로 현관문을 뛰쳐나가 저녁 산책을 했던가 아닌가, 그런 부분까지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왠지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사진을 볼 때 좋다는 느낌을 받을까? 이런 식의 자문은 한번도 해본 적 없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잠시 동안 이어질 문장들은 정말이지 그렇고 그렇다기보다는 이 자리를 스치다 잠시 마주친 충동에서 비롯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에 지나지 않는 말들일 수 있지만 말이지, 곧장 떠오르는 건 사진을 보았을 때 그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사진...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동안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비비안 마이어를 그려보지 않은 적 있었나, 그런 적은 아직 없지 않나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질문들 그러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그린 그림 속에서,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거나 때론 뷰파인더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피사체를 응시하며 셔터 버튼을 누르는 비비안 마이어는 대체로 혼자다. 다만 그에게 있어 혼자라는 형식 혹은 양상은 섣불리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이미지 또는 감정으로 치환되는 것이기보다는 삶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한 면모 같은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불가피하게 삶의 어느 순간 극에 달하듯 다다랐을 외로움을 그 실체를 까마득한 내가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나에게도 함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이런 말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을 처음 보았을 때 그를 이미 오래전부터 만나오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무래도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중요한 일부인 것만 같았다. 나로서는 이렇게밖에 달리 말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중요한 사람을 살아 생전에 만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지, 만나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다른 방식으로는 한사코 무슨 일이 있어도 얻을 수 없는 크나큰 기쁨일 테지만 그래도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볕 좋은 터를 잡고 지내오셨음을 아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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