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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Dec 02. 2022

감정의 점막

“안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니 환자는 계속 기침을 하고 있더군요.”

“기침은 갑자기 나온거예요.”

“환자분은 ‘갑자기’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군요. 나도 그 말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

빠르게 웅얼거리는 뒷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에게 또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TV에 명의로 출연한 그의 병원은 집 부근에 있었다. 유명세를 타고 몰려든 사람들로 대기실은 북적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고개를 숙인 채 건조한 목소리로 상태를 물었다. 목이 자주 잠긴다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쑥, 목소리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 소리를 잃을 수 있으며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의 엄포가 과잉진료로 느껴졌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며칠씩 시달리던 증상이 약만 먹으면 사라졌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라는 말에 한동안 처방전을 받으러 다녔다. 갈 때마다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고분고분 따랐다. 얼마쯤 지나자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약을 먹으면 속만 쓰리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엄포에서 풀려난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했다. 


몇 년 후 그의 병원을 다시 찾았다. 그사이 분위기가 싹 달라져 있다. 대기실은 적막감이 돌고, 여러 명이던 간호사도 한명 뿐이다. 벽에 붙은 여섯 개의 화면에는 그가 방송에 출연했던 영상만이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다. 숨조차 조심스레 쉬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침이 잘못 넘어갔는지 갑자기 기침이 났다. 목구멍에서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기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진료실에 불려가 입을 틀어막고 서 있는 내게 그는 차트를 들여다보며 나에 대한 정보를 책 읽듯 읊어댔다. 십년 전에 다녀갔으며 그밖에도 나에 관한 많은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고 했다. 


“보세요. 환자분이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멈출 수 없게 기침이 나왔겠어요.”

그는 확신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침을 잘못 삼켰을 뿐이에요.” 

“이대로 두면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구요. 또 질문할 것은요?“

제 말만 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권위적인 그와, 그것을 못견뎌하는 뒤틀린 내 심사가 날카롭게 부딪혔다. 

“선생님은 항상 환자에게 취조하듯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그는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두꺼비처럼 튀어나온 눈을 굴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예고 없이 터지는 기침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공항에서 생겼다. 함께 탑승한 승객들은 경유지인 러시아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스페인 행은 나뿐이다. 공항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돌고나도 시간은 넉넉했다. 미리 탑승구를 확인해보니 안내와는 달리 엉뚱한 곳으로 바뀌어 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문이 열릴 기미가 없다. 안내데스크를 다시 찾아 손짓발짓을 해대며 물으니 그새 또 반대쪽으로 바뀌었단다. 현재위치에서 최대한 빨리 뛴다 해도 간당간당한 시간이다. 이러다 비행기를 놓치는 건 아닐까. 불안이 밀려왔다. 


무작정 달리는데 목구멍이 타들어가고 다리가 뒤틀렸다.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는 거대한 동체 앞에 다달았을 때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입을 틀어막을수록 거세졌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멈출 수도 감출 수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헐떡거렸다. 스튜어디스가 처방으로 물을 갖다 주었지만 그마저도 목으로 넘길 수 없었다. 비행기의 진동이 사라지고 구름 위를 유유히 날 쯤에다 기침은 가라앉았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 들어설 때까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약사에게 처방전을 내밀며 “아니, 저 의사는 원래 저렇게 환자를 윽박지르세요?”라며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약사는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만 지었다. 병원 건물을 나오는 순간 기침이 딱 멎었다. 내 기침은 정말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권위적인 그의 진료에 내 감정의 점막이 자극을 받아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는 사람의 불안까지 읽어내는 명의가 맞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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