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했지 집주인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 어느 대학 교수라고도 하고 유명한 소설가라고도 했다. 남의 말 사흘 못 간다더니 입방아는 금방 잦아들었다. 작가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던 나는 궁금증이 더해 갔다. 이 먼 곳까지 무슨 연고로 왔을까. 석양을 감싸 안고 흐르는 탐진강에 반했을까. 아니면 고택에 매료되었을까.
터가 천 평이라 했다. 귀촌을 준비하던 나도 욕심이 나는 매물이었지만 땅은 넓고 건물은 오래되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도 미련이 남아 간간이 확인을 하던 차였다. 어느 날 매매 완료라는 문구가 싸이트에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클레인이 드나들고 지붕이 뜯겨 나갔다. 두어 달이 걸린 보수로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휘어 가던 집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수리가 끝난 후 대문에 ‘매구책방’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사람도 없는 외진 곳에서 책을 판다는 말인가? 아래채는 상주 작가들을 위한 숙소일까. 읍내 가는 길목에 있는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인기척을 살폈다. 문은 늘 닫혀 있었다. 뒤꼍 무성한 숲과 어우러진 고택은 앉아만 있어도 글이 술술 풀려 나올 것만 같다.
이제나저제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 빠끔히 대문이 열렸다. 때를 놓칠세라 무조건 달려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몸뻬 바지 차림의 여자가 “어떻게 오셨어요?”라며 다가온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진 눈매가 선하다. 고양이 밥 주려고 문 열어 놓았다며 도망가던 고양이들이 이제야 대문 안까지 들어온다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지나다 들렀다는 내 말에 문을 활짝 열어 주며 앞장서 걷는다. 널찍한 뜰은 세월을 보듬고 서 있는 고목들과 화초들이 어우러져 있다.
집필실로 짐작했던 아래채가 서점이다. 벽면을 두른 책장에 소설과 동화, 그리고 갖가지 책들이 꽂혀 있다. 박경리와 최명희의 뒤를 잇는다는 작품인 대하소설 『반야』도 묶음으로 쌓여 있다. 책방에 있는 책들이 거지반 본인의 작품이라는데 그럼 집주인이 바로 그 작가란 말인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는 내게 『반야』를 아느냐 묻는다. 알다마다. 무녀인 반야가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상 세계를 이루어 가고자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 아니던가. 그뿐 아니라 익히 알고 있는 작가의 소설만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나의 관심을 놓아주지 않았던 고택이 바로 그녀의 집필실이었다.
집필실이 있는 안채는 밖에서 보이던 대로 마당보다 한 치는 높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서 보면 마을 모양이 배의 형상이라는 말에 마치 바이킹을 타고 앉은 기분이다. 가만있어도 중력을 잃은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책으로 둘러싸인 마루와 그녀가 토해 놓은 언어의 실타래를 품은 노트북이 덩달아 돌아간다. 글을 쓸 때면 자신이 그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문을 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은 느낌이라니, 그녀는 이렇게 앉아 자신만의 무한한 이야기 바다를 항해하는가.
나는 흔들림 없는 낮은 집에서 목적지 없는 항해 중이다. 고개 들면 보이는 하늘과 불어오는 바람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언어들을 내가 창조한 언어인양 따다 삼키고 날마다 새롭게 밑줄 긋는 거미줄에 문장을 걸어 놓는다. 쓰는 일은 뒷전이고 내 반경 안에 있는 것들을 읽기만으로도 빠듯한 날들이다. 평온한 항해에 매구라는 파도를 만났다. 미친 듯이 써 내려간다는 그녀 앞에서 중심을 잃었다. 풍랑주의보도 없이 출렁거리는 파도는 수면(水面)이 잔잔할 때도 심연에서 일렁거렸다.
오는 사람마다 책을 줄 수 없어 책방을 차렸다는 그녀가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주인공 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 역시도 유서 깊은 마을을 배경으로 삼았던 작품 속 분위기와 흡사했다. 묻지 않아도 이 집에 반한 이유를 알겠다. 땅을 좋아해야만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고 믿는 그녀는 지금 집 옆 다리쯤까지 발짝을 뗐단다. 이제는 사람과도 친해질 수 있겠다는 말이 나를 향한 고백처럼 들렸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는 책꽂이에서 『매구 할매』라는 소설을 뽑아 겉장을 넘겨 내밀었다. 속지에 그녀와 내 이름이 나란히 적혔다. 고요하지만 또한 맹렬하게 살고자 하는 그녀의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천년 묵은 여우가 변해서 된다는 전설 속의 짐승 매구, 어쩌면 그녀는 매구 할매처럼 상처 입은 영혼들을 어루만지기 위해 이곳에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그 냄새를 맡은 나도 여우의 종족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