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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오늘은 Mar 28. 2021

먹고사는데 필요한 건 말이야

  '이모, 제가 알바하던 가게가 코로나 때문에 폐업을 하게 돼서요... 죄송하지만 혹시 이번 달 월세를 다음 달에 월세 낼 때 같이 드려도 될까요...?'

  강제 실직자 신세로 한 달 정도 깜,빡 쉬고 이제 좀 일을 해야겠구나 싶어 어플을 뒤적인다. 눈에 들어온 건 시급 12000원짜리 학원 알바, 손에 익은 최저시급 피씨방 알바. 월세 두 달치면 74만 원에 내가 한 달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나로는 안 되겠네.


  학원 알바는 타 알바 자리에 비해 건강한 신체나 알바 경력 외에도 기본 스펙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니 지원자가 적어 시국과 관계없이 공고가 올라오는 편이다. 본디 24시간 영업을 하던 피씨방들은 코로나 때문에 9시까지만 영업을 하게 되면서 야간 알바들을 대거 잘랐다. 다시 정상 영업을 하게 된 지금 급하게 야간 알바생을 구하는 공고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별거 아니긴 하지만 알바 꾀나 해본 사람으로서 알바에 잘 붙는 팁을 말하자면..


첫 째, 전화 지원하기

 사장님들은 바쁘다. 일일이 메일에 들어가 보는 수고로운 짓을 보통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드럭스토어, 학원 등은 제외하고) 결국 고용주들은 행동력 있는 알바생들을 선호한다. 고용 공고가 올라오는 어플 창을 아래로 쭉 내려보면 '전화 절대 사절', '문자로 지원해주세요.' 등의 문구가 있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바라는 대로 지원하고 그 외에는 전화가 제일 빠르다. 보통은 전화로 인적 사항을 물어보고는 이력서 지참해서 언제 면접 보러 오세요~하는 수순이다. 전화를 안 받을 시에는 문자를 남기면 된다. 문자를 남길 때에는 '안녕하세요. 00에 올라온 채용공고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정도의 인사말, 이름/나이/성별 등의 기본 인적사항, '관련 알바 경험이 많아 자신 있다', '휴학 중이라 장기근무 가능하다' 등의 간략한 어필, '연락 주세요' 마지막 인사. 이 정도의 4-5줄 문자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두 번째, 이력서에는 큼직큼직한 것만 적기

 지원분야랑 상관없는 알바 경력 100개 적는 것보다 좀 길게 일한 관련 알바 두세 개가 훨씬 낫다. 일단 비슷한 일을 해봤으면 가르칠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 알바 여러 개 하다 보면 한 달도 못 다니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 한두 달 하다가 잘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잘못하는 경우도 있고, 부당하게 잘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잔잔바리들은 적는 것만 못하다. 알바 경력이 정 없으면 짧게 한 거라도 적는 게 낫지만 있다면 그냥 3개월 이상 일한 것을 적는 게 낫다. 전에 어떻게 그만뒀든 짧게 일한 게 많이 적혀있으면 이 친구는 적당히 한두 달 하고 그만두나 보다 생각할 수 있으니까. 고용주들은 기왕 뽑는 거 길게 일할 사람을 뽑고 싶다. 한두 달 일하고 그만둘 사람을 뽑아봤자 그 사람이 그만두면 귀찮은 면접, 새 일 가르치기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절박할 때만 써야 하는 스킬인데 나는 정 길게 한 일이 없으면 좀 늘려 쓴다. 1달 일한 거 3달 정도 했다 하고~ 3개월 일한 거 6개월 했다 하고~ 일일이 거기 연락해서 이 알바생 그만큼 일했나요? 확인하는 경우? 결단코 없다. 물론 기왕이면 거짓 없이 적는 게 좋겠지만 먹고살아야 되는데 어쩔 거야. 하지만 안 해본 일을 해봤다고 하진 말기. 그건 일 좀 해보면 티 나거든. 


세 번째, 스마일맨, 예스맨 하기

 전화든 면접이든 목소리나 표정에서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 이건 꼭 알바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회생활에서 그렇겠지만 우물쭈물할 말 못 하고 소곤소곤 조용히 말하면 의욕 없어 보이기 마련이다. 알바 면접은 쉽다. 별거 아니다. 내 생계줄이긴 하지만 그거 떨어져 봤자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떨어지면 다른데 또 지원하면 된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고 편하되 자신 있게 말하자. 일단 나는 면접을 볼 때만큼은 웃음이 얼굴에 밴 것처럼 행동한다. 어지간해선 알바들은 다 서비스직 종사자이기 때문에 평소 인상 찌푸리며 다니는 알바생을 뽑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나는 서비스직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하고 웃으며 어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면접 질문은 뻔하다. 인적사항 몇 가지, 저번 알바는 왜 그만뒀는지, 길게 일할 수 있는지,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가끔씩은 '우리 가게 많이 바쁜데 할 수 있겠어요?' 정도. 저번 알바 왜 그만뒀냐는 질문에는 '학교 시간표가 바뀌어서,,,'처럼 '어쩔 수 없이'를 어필해야 한다. 내 자의로 그만두거나 잘리거나 이런 건 입에도 담지 말고 그냥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걸로. 나도 전 피씨방이야 폐업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전 알바만 해도 사장님이랑 대판 싸우고 그만뒀다. 사장님이 알바생들 사이를 이간질했기 때문인데 뭐 각설하고 그런 거 말해봤자 좋을 게 없다. 그리고 언제부터 일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다음 주부터라도 바로 가능하다~가 급하게 알바생 구하는 고용주 들이게는 만점 대답일 거고. 그 외에 질문들을 받았을 때 우리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예~! 

우리의 목표는 알바에 붙는 거지 뭐든 할 수 있는 멋진 알바생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붙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일하는 게 맞고 서비스직이라면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은 하겠다만 고용주가 바라는 *100점짜리 알바생상*을 내가 어떻게 다~ 충족하냐고. 그런 건 무리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건데, 그래도 뽑는 건 고용주 마음이니까. 일단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봐야지. 아, 길게 일할 수 있냐고 물을 때도 대답은 예스다. 사람 일이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얼마 못하고 그만둘 수 있다. 일해보니까 너~무 힘들 수도 있고, 누가 갑질을 할 수도 있고, 진짜 학교 시간표가 안 맞아질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할 건 고용주가 뽑을 사람은 길게 일할 사람이라는 거. 그리고 내가 일을 해야 한다는 거.



  아마 이 정도만 해도 뽑고 싶은 알바생 축에 낄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경력 많은 알바생이 지원해서 떨어지는  능력 밖의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도 위와 같은 방법을 백분 활용해서 피씨방 야간과 학원 알바를 지원했다. 두 개 같은 날 면접을 봤고 둘 다 붙었다. 박수 짝짝. 알바비는 한 달은 일해야 나오는 거라서 월급 받기 전에 월세 날이 찾아왔지만 다행히도 저번 달에 했던 설 선물세트 팔기 단기 알바비 30만 원에, 대외활동하면서 두 부문 수상해서 받은 상금 50만 원으로 두 달치 월세를 낼 수 있었다. 거봐, 다 어떻게든 다니까. 밀린 월세도 냈겠다. 이제 다음 달부터는 조금 여유가 생길 것이다.


  주중에는 주 삼일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밤을 새워가며 새 일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3주 정도 지나면서 점차 그 피로에 익숙해져 갔다. 학원에서는 아이들과 정서적 유대감이 쌓여갔고 피씨방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재미지게 회식도 다.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이 어디 안 가는지라 일이 고되더라도 마음 붙일 곳이 있으면 몸이 움직여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먹고사는데 필요한 건 자본이다. 조급해지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자본과 공허해지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자본. 돈은 인생에서 터부시 할 수 없는 것이다. 있다고 무조건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없으면 확실히 불행에 쉽게 노출되고 마니까. 하지만 경제적 자본만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나는 그게 사회적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괜스레 외로워지곤 하는데 내 주변에는 고맙게도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떠올리면 허하던 마음이 어느 정도 부풀어 제형태를 갖춘다. 생활에 허덕이느라 해주는 거라곤 없는 나에게 툭하면 밥을 사주며 나의 시간을 틈틈이 채워주는 친구가 있고,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서는 '너를 아낀다'라고 온몸으로 표현해주는 한 친구는 힘들 땐 자신을 불러달라 이야기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디게 느껴지는 게 싫어 대뜸 전화를 걸어도 맥락 없이 조잘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다음 달에는 여유가 좀 생겨서 그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이기적이게도 조금 덜 주고 조금 더 받고 싶어 하는데 그들은 이런 나에게도 곧잘 손을 뻗어주어서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돈이 ' 수 있게' 한다면, 이들은 나를 '살도록' 만든다.




맑은 나날들과 조급해져 가는 마음이 엇갈리기만 하는 어지러운 봄을,

빠르게 지나가는 이 무심하게 아름다운 3월을,

그저 무사히 보내고 싶다.


요즘 들어 부쩍 따뜻해진 날씨처럼,

그에 맞춰 피어오르는 꽃봉오리들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오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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