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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원 Jan 14. 2021

똥줄이 탄다

Ep. 5 +40,701 (-39,299)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덤블도어가 천천히 말했다. 그의 하늘색 눈이 해리에게서 헤르미온느에게로 옮겨 갔다. “시간이란다.”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웃고자 부러 만들어 낸 듯한 맞춤법 실수를 종종 한다. 지적받으면 긴 외국생활 탓을 하며 멋쩍게 웃고 만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영 면구하다. 활자로 인쇄될 책에서 번번이 양해를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글을 쓰는 한편 헷갈리는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용례를 모으고 있다. 이를테면 ‘붙이다’와 ‘부치다’는 꽤나 헷갈린다. 국립어학원에 따르면 두 단어의 어원이 같다고 하니 내 탓만도 아니다. 


급히 봉투에 우표를 붙여 그에게 부쳤다편지를 숨겨뒀던 구멍을 들키지 않으려 장롱을 벽에 붙이느라 힘이 부쳤지만 말미에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극비에 부치는 안건이므로 자꾸 조건 붙이지 말고 다 읽고 나면 불 붙여 태우시오. 아니면 빈대떡으로라도 부쳐 드시든가. 


보조사는 체언 뒤에 붙여 써야 하는데 ‘뿐’이 한 예이다. ‘오직 그렇게 하거나 그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엄격한 성정의 보조사는 무려 15세기 문헌부터 등장한다고 한다. 그때 모습은 

...쓰뿐? 이 보조사를 찾게 된 연유는 간단하다. “작가의 삶은 인정받거나 퇴짜 맞거나, 화려하거나 초라하거나, 극단만 있을 뿐 중간이 없다.”라는 문장을 읽는데, 하필 ‘… 있을’에서 줄이 바뀌었다. 그래서 ‘있을 뿐’이라는 건지 ‘있을뿐’이라는 건지 확인해야 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단지 그 뿐. 

본의 아니게 ‘뿐’의 단호함을 알고 나니 묘사된 작가의 삶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너무 극단적인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틀린 말만도 아니다. 딱히 작가로 살겠다고 거창한 선언을 한 것 역시 아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책이 출간되면 평가 받거나 무시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평가는 다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책을 내기로 한 이상 평가를 받고 싶고, 더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 이럴 때는 목표와 태도를 확실히 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혼자 즐겁자고 하기엔 내 나이가. 독자에게 최선의 책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 최선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구정까지는 초고가 나와야 할 걸요?’

며칠 전 친구가 툭 던졌다. 

“푸하하하 뭔 소리야”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는 황급히 구정을 검색한다. 2월 12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 달밖에 안 남았구먼.” 

그런데 왜 가슴이 철렁하지. 잽싸게 머리를 굴려본다. 맞다. 그가 맞다. 믿기지 않지만 구정까지 초고가 나와야 한다. 조금 관대하게 잡아도 2월 말까지는 초고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4월 30일 전까지 최소한 세 번은 원고를 뒤집어 가며 다시 쓸 수 있다. 내게 필요한 건 …. 시간이란다.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직구해 놓은 타임 타이머를 적극 활용, 뽀모도로 기법을 쓰고 있다. 이 테크닉의 골자는 집중하는 시간 + 짧게 쉬는 시간으로 시간을 쪼개고, 그 시간 동안 할 일을 미리 선언하는 것이다. 집중하는 시간 동안은 하기로 한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가 김명남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집중하는 시간의 단위를 KMN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게 가장 효율적인 1 KMN을 찾느라 이것저것 실험 중이다. 50분+10분은 조금 숨이 차다. 초반에는 괜찮아도 시간이 쌓이고 체력이 소모되다보면 집중력 역시 흐트러진다. 45분+15분은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뛰는 느낌이라 꽤 길게 뛸 수 있을 것 같다. 


관건은 하루에 최대한의 KMN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것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KMN들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아이디어는 서서히 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까꿍'하고 튀어 오른다. 처음부터 튀어 나오면 좋으려만 늘 마지막 순간에 등장한다. 4 KMN을 써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면, 첫 번째 1 KMN에 0.25 아이디어, 두 번째 KMN에 0.25… 가 아니라 0, 0, 0, 1의 형태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셈이다. 그러나 앞의 세 0이 없으면 뒤의 1도 없다. 그래서 일상은 최대한 단순화 시켜 KMN의 사이 15분에 꾸겨 넣거나 외주주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연속적인 KMN을 최대한 모으고 있다. 하루에 몇 KMN까지 해낼 수 있는지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이다.


완성할 꼭지가 10개라고 가정하면 대략 2월 말까지 남은 7주동안 한 주에 1.4 꼭지를, 11,200자를 써야 한다. 똥줄이(똥줄은 대장이랍니다, 여러분. 큰 창자) 타기 시작한 나는 참고서적 읽기와 원고 쓰기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고 있다.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있는 책은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제5도살장>, <스스로의 회고록>,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정신없죠? 




Photo by Aron Visual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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