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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원 Dec 31. 2020

일필휘지, 할 수 있다.

Ep. 3: 30,961자 (-49, 039자)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것이 싫다. 두 번 듣는 것도 싫다. 앞 문장에 두 번이 두 번 들어간 것도 싫다. 좌변기에서  손을 뻗는 거리가 가장 짧도록 화장실 휴지의 끝은 벽에서 먼 쪽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당연한거 아냐?!) 물건 찾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나의 행동 패턴에 적합한 위치에 물건이 ‘저, 여기 있습니다’하며 대기하고 있는게 좋다. 

글쓰기에서도 늘 최적의 루트를 찾고 시작하려 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유려하게 물이 흐르고 군데군데 꽃도 피어 있는 그런 지도 말이다. 그러므로 나의 글쓰기는 시작도 전에 이미 망하는 루트를 성공적으로 타고 있었다. 
 

그 루트는 이러하다. 원고 청탁을 받는다.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면서도 망설인다. 쓸 수 있을까? 

결국 수락한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궁극의 지도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몰라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안절부절하느라 글은 커녕 다른 일도 못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마감 며칠 전 부터 글을 쓰겠다고 한 자신을 저주하며 밤잠을 설쳤겠지.... 단어 하나를 쓰고 그 다음에 올 단어들을 , 문장 하나를 쓰고 그 다음에 올 문장들을 머릿속으로 가늠하며 이것도 아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냐 하며 머리를 쥐어 뜯는다. 그리고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초능력을 발휘해서 (혹은 눈물로 읍소하여 마감을 며칠 미루고) 무엇인가 써서 제출하긴 한다. 그리고 망하는 루트에서 자학의 루프로 옮겨 탄다. 나는 왜 이 모냥인가. 


이 행동 패턴이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자기파괴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난들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써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원고 한 편도 아니고 책을 한 권 써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 책을 쓰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자체가 나로서는 제일 큰 장벽을 뛰어 넘은 진전이다. 그리고 그건 모두 존 맥피 덕분이다. 존 맥피는 정말 기가 막히게 글을 쓴다. 논픽션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평가받는데, 그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어보면 수긍이 간다. 그런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맥피는 에세이  <네 번째 원고>에서 글쓰기의 본질은 고쳐쓰기라고 못 박는다. 초벌 원고가 없으면 진짜 글쓰기는 시작된 게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정작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초고 작업이란다. 집필 시간으로 따져봐도 첫 원고와 나머지 원고 (2, 3, 4차 수정본) 모두를 작성하는데 걸리는 시간 비율이 4:1 정도라니 말이다. 

그는 빈 모니터를 노려 보며 아무 말이나 던지는(실제로 ‘fling’이란 동사를 썼다.)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면 일종의 ‘핵’이 만들어지는데 그 핵을, 또 근성을 가지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 하나하나 문제를 풀며 밀고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도달하면 다시 첫 문장부터 출발. 이 과정을 네 번쯤 반복하면 글이 완성된다고 한다. 


초고가 진짜 글쓰기가 아니라는 선언이 나를 자유케 하리니. 이제 나는 일필휘지, 할 수 있다. 어차피 다 지울거니까! 지금 쓰는 글이 최종본이 아니니까! 아무 부담없이 손가락이 허락하는 속도로, 제이 콘라드 레빈슨의 표현을 빌자면  ‘내가 얼마나 타자기를 빨리 치는지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하느님이라도 서둘러야 할 지경이 된다.’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 마감이 무려 이틀이나 남은 시점에 출판사에 구성안과 목차를 보냈다. 이 내가!!! 여러분, 제가요! 마감이 이틀, 48시간이 남았는데요! 이미 보냈어요!! 피드백도 벌써 받았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죽지 않았어요! 자학의 루프로 다시 슬금슬금 기어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구성안과 목차를 보냈으니 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즐겁게, 괴롭게 초고를 쓸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들과 앞으로 쓰는 것의 대부분을 지울 것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이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꼭 거쳐야 하는 단계라는 것 역시 잘 안다. 그래서 불확실함을 품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달랠 수 있다. 글이 완성되어 가면서 글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 역시 서서히 몸을 드러낼 것이다. 지도가 없어도 출발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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