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주인이 매일 같이 귀여워하다가 갑자기 걷어차더라도
오랫동안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는다.
그 일의 심각성에 대해 10분 이상 고민할 만큼 진지하지도 않다.
다음 날이면 또 와서 꼬리를 친다.
왜 부당하게 걷어 차여야 하냐고 항변하거나,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으며 걷어차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태업을 하거나 단식을 하지도 않는다.
언제든지 주인의 발밑에 엎드려 있다가 불러 주는 순간
감격하며 달려가는 게 개다.
'그녀의 세 번째 남자' 중에서/은희경
나에게는 딸이 두 명인데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어릴 때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나고 약간씩 병치레를 했어도 심각하게 아프거나 수술을 한 적 없이 컸다.
자식과 개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 한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개가 아픈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이런 생각조차 하는 것이 내심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개는 말을 하지 못하니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내기 쉽지 않고
사람 병원만큼 동물 병원이나 의사를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한다.
삐삐가 다리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심장병 약을 먹는 동안 내 마음은 아팠고 편한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은 비교적 옛날에 지은 아파트인데 각 방마다 작은 베란다 공간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밖의 유리창과 중간에 문이 있어 이중 인 셈인데
최근 일 년 간 삐삐는 그곳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현관 앞에 앉아서 밖의 소리에 민감하게 짖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베란다에 집을 넣어 주었다.
내가 아침에 피트니스 센터에 간 후부터 올 때까지 삐삐는 그곳에서 내내 잠을 잤다.
내가 돌아왔을 때 미처 소리를 못 듣고 잠을 자고 있기도 했고 뒤척거리다 눈을 뜨면서
옷을 갈아입는 내 눈과 마주치면 일어나 나왔다.
어느 날은 아빠가 놔두고 문을 닫은 채 몰래 밖에 잠시 다녀온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러다가 깨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했지만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깊게 잠을 자곤 했다.
우리는 삐삐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잠귀가 어두워지고 자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삐삐가 그러려니 했고
심장 약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고 매달 병원을 가고,
조기에 발견을 했으니 난 좋은 보호자 노릇을 한다고 자신했던 것 같다.
"개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10배 정도 무디다"는 이야기를 수술한 동물병원 의사에게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미처 그걸 모르고 지나치거나 개가 참을성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삐삐도 나에게 한 번도 보채지 않았고 제이피 역시 그랬으니까..
몸이 불편하다고, 오늘은 산책 나가기 싫다고,
엄마 나가지 말고 함께 곁에 있어 달라고 이야기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개가 사람과 다른 점 중의 좋은 이유 하나가 말을 하지 못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을 하지 못하니 불평도 미운 소리도 지껄이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받는 상처는 대부분 말 때문인데
개는 말을 하지 못하니 미운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극히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또 개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도 맞다.
사람처럼 믿었던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지도 않고 사랑을 해주면 그 이상을 돌려준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개의 신뢰와 마음을 얻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주인이 돈이 많아도, 또 남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데
잠시 먹을 것을 얻어먹을 때 그뿐, 금세 뒤돌아 가기 때문이다.
남편은 베란다 문을 열어두면 먼지가 들어온다고 싫어하여
밖의 유리창은 물론 중간 문도 늘 닫았다.
삐삐가 깊이 자는 시간은 아침 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들락날락했다.
수시로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베란다에 누워 있다가 나온다고
발로 툭 툭 유리창을 치면 문을 열어야 했다.
나왔다가 또 들어간다고 툭, 들어갔다가 나온다고 툭
오죽하면 자동문을 만들어야지 하며 고스란히 문 여는 심부름을 했다.
심한 때는 하루에 수십 번을 문을 열고 닫아 주는데 그 명령은 아주 단호했다.
혹시나 소리를 못 들으면 신경질 적으로 문을 툭 툭 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몸이 불편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삐삐는 나를 더 좋아했지만 아빠와도 잘 지냈다.
제이피는 나 혼자 기르다시피 했지만 삐삐는 아빠와 절반을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남편이 목욕과 미용 담당이었다.
데리고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예전 제이피 가 다니던 애견 미용사를 찾아갔다.
삐삐는 생전 처음 미용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삐삐에 대한 애정이 없어 맡겨 두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찾으러 갈 시간이 되어서 조금 늦으니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제이피는 단 한번 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애견 미용사는 남자인데 간판에 코카스패니얼 전문이라고 해서 처음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몇 번 제이피 미용을 하러 다녔는데 제이피를 감당하는 미용사가 없었고
어떤 곳은 못 하겠다고 거절을 당했다.
지금도 남자 미용사가 드문데 그가 제이피를 다루어 잘했지만
나중에 애견 샵을 열어서 개를 팔고, 자기 마음대로 개에게 주사를 놓는 등
간단한 치료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번은 철장에 갇힌 개들이 짖어대자 “조용히 해” 하며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난 후부터
그를 믿을 수 없었다.
다른 곳은 안 되니 할 수없이 그곳을 드나들었지만
여름에 딱 한 번이었고 한 시간 안에 끝내고 목욕은 일체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또 제이피를 철장에 넣어두지 않도록 미리 시간 전에 도착했다.
물론 그러려면 당연히 미용비도 더 주고 간식과 빵을 사 갔는데 그 사람은 제이피와 나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삐삐에겐 처음이라 그런 신경을 안 썼다.
처음엔 순한 녀석인 줄 알았고 작은 개이니 당연하게 맡겼으며
오죽하면 맡겨 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조금 늦을 것 같으니
목욕도 시켜달라고 전화까지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찾아 간 날 삐삐는 그곳에 들어서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엔 얼떨결에 미용을 했지만 그곳이 두렵다는 반응 같았고
미용사 역시 자꾸 물려고 해서 얼굴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하기에
얼굴은 괜찮으니 몸만 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는 그곳을 가지 않았다. 물론 삐삐를 데리고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결국 동네 병원에서 미용을 시키려고 했지만 삐삐처럼 무는 개는 마취를 시켜야 한다기에 포기했다.
그리하여 남편은 전담 이발사가 되었다.
가끔 남편이 미용을 하다가 물리기도 했지만 아빠와는 곧잘 했다.
남편이 목욕을 시키거나 미용하는 동안 난 밖에서 사과를 깎아 준비해 놓는데
삐삐가 고생했다는 의미로 보상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목욕탕 문이 열리자마자 삐삐는 뛰어나와 당연히 그릇으로 달려갔다.
삐삐는 아빠가 집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지 베란다에 들어가지만
남편이 북경에 한 달에 한번씩 다녔으므로 그때마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며 소리만 나도 짖어댔다.
밤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옆 집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에도 뛰어 나가 짖었지만 보통 2-3 일 후 지나면 아빠가 안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포기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날에는 신기하게 눈치를 채고
문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드디어 아빠가 집에 들어서면 좋아서 펄 펄 뛰고 입을 핱아대면서 대단한 환영식을 했다.
사랑은 측은지심일까?
나는 개를 사랑해서인지 항상 그들이 가엾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아무 곳이나 데리고 다닐 수 없고 늘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운명이니 말이다.
아프지 않아도 자는 모습을 보거나 눈을 들여다보면 착한 눈빛이 슬프기까지 할 만큼 안쓰러웠는데
난 여전히 두 녀석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몇 년 전 겨울, 두 딸과 샌프란시스코에 갔는데
잘 사는 나라 미국에 거지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거지들이 개를 끌고 다니며 거리에서 생활하고 구걸을 하는데 자기 개는 푹신한 방석이나 담요에 올려두고
끔찍이 아끼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오래전 기사를 읽은 적 있는데 사람 혼자 보다 동물과 함께 구걸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글을 비로소 떠올렸다.
구걸을 하는데 개를 이용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내 경우는 확실히 사람 혼자 있는 쪽 보다 개를 데리고 있는 거지에게 마음이 갔다.
특히 하와이 여행 중에 많은 개를 만났는데 딸이 사는 아파트가 개와 함께 살도록 허락된 곳이라서인지
수많은 개들이 집집마다 많았다.
그곳 개들은 작은 개부터 송아지만큼이나 큰 무섭게 생긴 개들도 같이 활보하고 다니고 있었다.
바닷가, 공원은 물론 길거리나 백화점, 마트 등 개와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는 개를 데리고 외출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도 어렵고 집에 떼어 두고 가야 하니 갑자기 낯선 환경에 맡기거나
혼자 집안에 남아 우리를 기다린다.
산책을 나가도 혹시 길거리에 배변을 아무렇게나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는 것 같은데
나의 피해 의식 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를 몹시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방송에서 개에게 물린 사건 사고 소식을 들으면 걱정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물론 개를 데리고 사는 만큼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 같이 개를 데리고 사는 사람이 욕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좀 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개와 사람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개를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를 사랑한다고 하면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고
인간 사회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태여 화제에 올리지도 않는데
요즘은 개를 기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기 집 반려견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묻고 싶다,
'그대는 누군가를 열렬히 10년 이상을 단 한순간도 변함없이
처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누군가가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