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까치 그리고 거북이
개와 가족이 되고 난 후부터 다른 동물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동네에 길고양이들이 많이 있는데 '캣맘' 사건도 있었듯
우리 아파트에서도 고양이에게 음식을 주지 못하도록 팻말을 붙여 놓았다.
길 고양이는 삐삐가 산책을 다니던 그 아파트에도 많았다.
산책을 하다 보면 풀밭 여기저기에서 눈에 뜨였고
심지어 새끼 고양이 여러 마리도 함께 보였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고양이 사료를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아파트에서는 고양이 사료 주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는데
넓은 공원에 나와 있는 고양이까지 참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라서 우리가 산책 나갈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났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고 실제로 일정한 시간에 나가면
고양이가 그 자리에 앉아서 야옹 소리를 내며 반겼다.
길고양이들은 변변한 먹이가 없으니 사료를 주어야 했고 나중에는 물도 함께 가져갔다.
먹이도 필요하지만 물이 중요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점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책임감이 느껴져서
남편은 일을 보러 해외로 나갈 때면 걱정을 하다가
떠나기 전날 미리 많은 양의 사료를 부어 놓거나
날짜가 길어지면 나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삐삐를 데리고 나가면 다른데 정신을 팔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한가하게 통화를 하기도 하고 한눈을 팔지만
난 한층 더 예민하게 앞뒤를 주시하고 귀도 열어야 했다.
눈앞에 사람이 없더라도 언제 어느 때 나타날지 모르고 개 역시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바람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밖의 상황은 늘 어수선하고
자연은 절대로 조용한 침묵이 아닌 끊임없는 소리를 내며 날 긴장시켰다.
그런 상황이기에 남편이 없을 때는 집에 삐삐를 데려다 놓고
잠깐 다시 나가서 밥을 줘야만 했는데
내가 평소 나가는 시간이 아닌 데다가 아빠까지 없으니 삐삐 역시 나에게 집착해서
간식을 던져주며 삐삐의 마음을 일단 달래 놓고
미친 듯이 달려서 사료와 물을 부어주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나가면 나타나던 고양이가 사라졌다.
남편은 매일 기다리고 야옹야옹 소리를 내며 불러 봤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남편은 아마 누군가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원래 길고양이들은 경계심이 많아서 절대로 사람 곁에 오지 않고
먹이를 주면 멀찍이 보고 있다가 자리를 비키면 조심스럽게 사료를 먹는데 그 고양이는 좀 달랐다.
아마도 누군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를 버린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어린 고양이를 데리고 기르다가 크면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고양이는 자기 영역이 있어서 기르다가 버려진 고양이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이미 그 구역에 다른 고양이들이 살고 있으니 영역 다툼에서 쫓기고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헌데 그 고양이는 사람 손을 탄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몸을 비비고
만지면 가르랑 소리를 내고 벌렁 눕기도 했다.
어느 때는 집까지 따라 올 기세로 뒤를 졸졸 쫓아와 억지로 보내야 했다.
늘 뒤돌아 올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걱정스러웠다.
집이 없고 보호자가 없는 야생에서 살아남기가 힘든 길고양이 생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편이 사료를 주는데 지나가는 여자 둘이 보면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길고양이가 사람을 따르고 만지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인데
보호자가 없는 고양이라고 하니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기 시골집에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혹시 그 사람이 데리고 갔을까?
우리는 추측과 상상을 했는데 차라리 그녀가 집에 데리고 갔다면 다행일까?
만약 데리고 살다가 버리면 어쩌나?
별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결국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 보면 자연과도 가까워진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시골을 모르기 때문에
나무나 풀, 꽃 이름도 아는 것이 없었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제이피를 데리고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나무가 얼마나 예쁜지 알게 되었는데
늘 길에서 보는 소나무도 봄이면 새 잎이 돋고 연한 녹색의 새순이 올라오는 걸 알게 되었고 볼 때마다 감탄했다.
쥐똥나무, 좀작살, 꽝꽝나무, 조팝나무, 화살나무, 아왜나무 등
많은 나무 이름도 알게 되었고 나무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저녁 나갈 때면 하늘을 쳐다보며 달과 별을 찾곤 하는데
젊은 시절 살면서 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거의 없었을까 생각한다.
삐삐는 하루 두세 번 밖으로 데리고 나갔는데
사람과 마찬가지로 밤새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줌을 눈다.
내가 일어나면 바로 데리고 나갔는데 기왕이면 흙과 풀이 있는 곳에서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고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바람을 쐬어 주는 게 목적이라 짧은 시간으로 끝냈다.
본격적인 산책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 2-3시쯤 데리고 나가는데
천천히 걸으면 20여분 걸린다. 점심 산책은 절대로 빠지지 않고 해 주었다.
저녁 산책은 하지 않다가 내가 당뇨로 인해 혈당 관리가 필요해져
저녁 식사 후 나가서 걷기로 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혼자 나가려니 삐삐가 따라가고 싶어 해서 데리고 나가게 되었다.
멀리는 가지 않고 가까운 정원으로 갔는데
밤이니 나오는 사람이 없는 데다 풀어도 달리 나갈 길이 없어 가끔 목줄을 살짝 풀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도 마냥 마음을 놓고 풀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처럼 저녁에 개를 데리고 나오는 주민들도 있고, 바람을 쐬러 오는 주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남편이 동행하였는데
삐삐를 중간에 놓고 내가 앞 그리고 남편이 뒤를 맡고 급한 경우
재빠르게 잡고 목줄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난 10 바퀴 씩 돌며 걸었고, 삐삐는 목줄에서 해방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며 나를 따라다녔다.
산책 중 어느 날 남편이 꼬리가 짧은 까치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날아다니는 까치를 보면 잘 모르지만 앉아 있을 때 꼬리는 확연히 길어서
마치 연미복을 입은 것 같이 보인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그 까치는 꼬리가 거의 없었다.
어디서 뜯긴 것인지, 아직 자라지 않은 것이지 알 수 없어서
‘꼬리 없는 까지’를 검색해서 찾았지만 그런 것이 안 나오니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보기에 꼬리가 없으니 멀리 날지도 못하는 것 같고
왕따로 지내면서 높은 나무가 아닌 항상 낮은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며칠 뒤 까치가 바닥에 놔둔 고양이 사료를 먹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작은 알갱이의 고양이 사료와 물을 주기 시작했다.
잡식성이라 까치는 사료도 먹는데 쌀을 조금씩 섞어 주었다.
그 새 역시 신기하게도 우리가 오는 시간이면 나타났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알아차리고 단번에 땅에 내려오지 않고 한 계단 씩
나무 밑으로 깡충깡충 뛰어 바닥으로 내려와 앉았다.
우리는 까치 이름을 '까꼬'로 짓고 (꼬리 없는 까치) 까치의 친구가 되었다.
혹시 다른 새들이 날아와서 까꼬의 사료를 다 먹을까 봐 지켜주기도 하고
공격하는 다른 새를 쫓아주기도 했다.
확실히 까꼬는 다른 새와 달리 높이 멀리 날지 못하고 늘 혼자 다녔다.
어느 날 손주가 집에 왔을 때 손을 잡고 데리고 나와 할아버지가 새를 불렀다.
설마 하는데 정말 까치가 날아왔다.
손녀는 그저 신기한 듯 박수를 쳤다.
그 까치 역시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다른 힘센 까치나 까마귀가 나타나서 쫒아버린 것일까?
혹시나 고양이에게 잡아먹힌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며
혹시 풀숲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해서 여기저기 찾았다.
끝내 안 보이니 남편은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며 매일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까치를 불렀다.
가끔 다른 까치를 까꼬 인 줄 알고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
날아다닐 때는 꼬리가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아파트 산책길은 마치 작은 공원 같아 좋았는데
특히 길 위로 차가 다니지 않아 안전하고 조경이 잘 되어서 눈이 즐거웠다.
또 산책길 중간에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봄이면 올챙이가 많았다.
그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되어 많은 개구리들이 바위에 올라와 앉아 밤에는 시끄럽게 울어댔다.
어느 날 남편이 거북이를 봤다고 웃으며 말하기에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진짜라고 하며 나를 연못으로 데리고 갔다.
정말 남편의 말대로 연못 주변의 바위 하나가 영락없는 거북이 모습이었다.
그렇게 다니던 연못 주변 길이었지만 그 바위를 미처 보지 못했는데 한번 눈에 뜨이니
다음부터는 그 바위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곳은 남편과 나의 아지트가 되었고,
우리는 거북 바위라고 이름을 붙이고 산책 중 잠시 바위 위에 앉아서 쉬면서 기도도 했다.
처음엔 우리 식구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그건 남편이 늘 빌기에 나는 오직 삐삐를 위한 기도를 했다.
아프지 말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살아 주기를...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 진짜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연못 쪽과는 멀리 떨어진 아파트 앞 길에서 누군가 거북이를 기르다가 버린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재활용품을 쌓아 놓은 곳에 커다란 유리박스가 눈에 뜨였다.
거북이는 멀리 못 가고 길에 기어 다니고 있었고 그걸 남편이 발견을 해서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거북이는 어른 손바닥 정도의 제법 큰 녀석이었는데 거북이를 길러 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다.
궁리 끝에 마트에 갖다 주려고 했는데 마트에서 파는 거북이는 모두 작은놈들이고
그곳에서도 받으려고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거북이는 물이 필요하니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어항도 먹이도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집에 있던 도자기 분수에 물을 채워 넣었다.
분수 시설을 빼내고 돌을 주워 와 앉아서 쉴 곳을 마련해주고 사료를 샀다.
어항을 사려니 마땅한 크기가 없어 도자기 그릇에 그대로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못에 넣어줄까 생각도 했으나 그곳은 물이 더럽고
겨울에는 물을 빼버리는 데다가 거북이에 대해 공부를 해보니
열대성이라 겨울에는 따뜻한 히터가 필요하고
특히 겨울에는 어항을 실내에 놔두어야 한다고 했다.
거북이를 발견했을 때가 7월이니 한창 더운 때라 살아 있었는데
계속 밖에 오래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도 3-5 일에 한 번은 갈아주어야 했는데 자주 물이 더러워져 손이 많이 갔다.
사료도 세 종류를 사서 조금씩 주고 상추도 가끔 넣어주었다.
사료를 먹는 모습도 신기하고 가끔 바위 위에 올라와 앉아 있기도 했다.
물을 갈아 줄 때는 밖에 내놓고 햇볕을 쬐어 주고 등도 씻기고
남편이 열심히 돌봤다.
우리는 임시로 거북이를 돌봤지만 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우선 큰 딸에게 매년 가야 하므로 일주일 이상 혼자 내버려 두고 갈 수도 없고
동물 병원에서 거북이를 맡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늘 거북이 새 주인을 찾고 있었는데 당장 누군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며칠 부탁을 하려고 해도 어항을 통째로 맡겨야 하니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훗날 삐삐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남아 있는 거북이를 보니 기분이 착잡했다.
거북이가 삐삐보다 먼저 우리 집을 떠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거북이는 남아 있고 삐삐가 사라졌다니...
혼자 남은 거북이를 보니 더 삐삐 생각으로 울적했다.)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마침 시누이가 거북이를 기른다고 해서 거북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시누이가 직접 데리러 왔는데 우리 집 거북이 크기 정도의 큰 거북이 두 마리가 있고
여름에는 집의 연못에 넣어 두고 아이들이 잘 본다고 했다.
남편은 거북이 사료를 사고, 보낼 준비를 하면서도 서운해했다.
결국 거북이는 우리 집에서 1년 4개월을 살았고
그곳에서 두 마리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안녕 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