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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Dec 05. 2020

(번외) 삐삐야, 언니야

안녕하세요 둘째 딸입니다.


삐삐가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남편은 삐삐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엄마 아빠 이 두 사람만 빼고 모두가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아빠는 나에게 절대 부산에 오지 말라고 했고,

남편은 몇 번이나 전화로 퇴근을 하면 몇 시쯤 집에 도착할 테니 미리 표를 끊어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사실 삐삐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괜찮아지려나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있으면 엄마 아빠가 마음껏 슬퍼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삐삐의 보호자인 아빠의 말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뒤 삐삐가 떠났다.

 


삐삐가 병원에 있던 무렵 저녁에는 유난히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딸아이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노을’ 동요를 반복해서 불렀다.

삐삐가 떠난 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삐삐가 하늘나라로 갔대.”라고 말하자 딸은 그림을 그리다 갑자기 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그 노래는 삐삐 노래가 되었다.   


나의 착각일 수 있겠지만 왠지 죽기 전 삐삐는 나를 기다렸던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건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곳까지 마음이 닿지 않았음을 의미하기에

삐삐를 보러 가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솔직히 후회한다기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삐삐가 간절히 보고 싶었더라면 어떤 것도 무릅쓰고 갔을 것이다.


나는 삐삐가 죽은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흔한 추모 사진 하나 SNS에 올리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자초한 미안함과 슬픈 마음을 들추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쪼개어 글을 편집하여 올리는 것에 대해 고맙고 미안해했지만,

사실 나로서는 이 작업을 하는 것이 삐삐에게 보내는 일종의 사죄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루어두었던 슬픔이 한 챕터, 한 챕터 정리할 때마다 고스란히 밀려왔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갑자기 삐삐가 없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고,

내 손안에 들어오던 삐삐의 촉감과 온도가 너무도 그립고 만지고 싶어서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리움이란 억지로 덮어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정말 많이 보고 싶다.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 다시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삐삐가 많이 웃었다는 것이다.

삐삐는 언제나 화를 내고 으르렁대는 개라고만 생각했는데

특히 <확인> 편에 있는 산책 사진을 보니 삐삐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 품에서 웃고 있는 삐삐

그 천하의 이삐삐도 은근슬쩍 저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니..

우리 가족은 종종 “개가 예전에 비해서 참 곰살맞아졌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이번에 사진들을 들춰보며 정말이네. 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삐삐가 우리 가족이 되어서 행복했던 게 분명하다고 엄마 아빠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두 분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어딜 가나 삐삐 자랑을 많이 했다.

누군가 개를 기른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사진을 꺼내 보여주고,

심지어 개가 성격이 나쁘고 사고를 친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삐삐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예쁜데 아무나 만질 수 없는 게 삐삐의 매력이라고도 했고

그래, 개가 아무나 따르면 되나 주인만 섬겨야지. 하며 오히려 삐삐의 까칠함을 추켜 세우기도 했다.  


한 번은 동창 모임에 갔을 때였다.

친구 중 한 명이 자기 새언니가 기르는 개라고 하며 비숑인데 어디서 분양을 받았고, 강남에 있는 미용실을 다니고, 잡지에도 나왔으며, 지금은 개 유치원에 다니는데 어쩌고 하며 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동네 미용실 출신인 우리 삐삐보다도 영 못한 게 아닌가?

내가 슬쩍 삐삐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더니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일순간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집중이 되었다. 그 잘난 척하던 동창이 슬며시 휴대폰을 내렸을 정도였는데 그때 얼마나 으쓱했는지 모른다.

삐삐야 너는 언니에게(나는 언니라고 불렀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동생이었어!


뽀뽀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삐삐의 표정변화가 웃기고 사랑스럽다.


아이를 낳고 얼룩덜룩해진 머리를 정리하고자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갔을 때였다.

출산하고 거의 첫 외출이었는데 그 가게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개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우리 집에도 똥강아지 하나 있어.’였다. 그 강아지는 다름 아닌 내 딸이었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말도 못 하는 채 나만 바라보며 꼬물꼬물 거리는 꼴이 꼭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용실에 머리를 하고 나오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사람들 마음이 다 비슷해서 아기를 보고 “아이고 내 강아지.”라고 하나보다.라고 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그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제이피와 삐삐를 내 동생이라고 여겼기에 ‘엄마의 개 사랑’에 대해 별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 글을 읽으니 삐삐에 대한 엄마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특히 <두 번째 다리수술>을 읽으니 더욱 그렇다.

의사 선생님이 하느님 같고, 꼭 내 잘못으로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 같고,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고,

잘 낫지 않던 병이 나으면 진료실을 나가기 전까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이런 마음을 향해 ‘그까짓 개 때문에’라는 말을 함부로 뱉을 수 있을까.

사람이라서 사랑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동물이라서 과분하다는 말이 과연 성립이 될까?

살아있는 것은 모두 엄마가 있고, 모두 배가 고프고, 넘어지면 모두 아프다고.

사람이건 강아지건 코끼리건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우리 모두가 기적이라고

5살짜리가 읽는 동화책에도 나오는데 말이다.

삐삐는 개라는 개체이기 전에 엄마 아빠의 ‘자식’이자, 우리의 '가족'이었다.


콩닥콩닥(글 박은정, 그림 최승혜/ 웅진 주니어)


오랜만에 삐삐가 아팠을 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커뮤니티에 들러 글을 쭉 읽어보았다.

여전히 삐삐보다 더 아픈 개들도 많고,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주인, 나는 비싸서 못 먹지만 아픈 개에게는 한우를 구워 먹인다는 주인, 이미 떠난 강아지를 향해 매일 편지를 남기는 주인도 있었다.   


엄마가 지은 ‘마중’이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먼저 보낸 녀석들이 저곳에서 다 같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뛰어놀다 먼 훗날 우리들을 마중 나와주길 소망해본다.


삐삐야 언니가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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