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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포레스트 Jan 27. 2024

출국 전 날, 내 숙소가 없어졌다.






 MBTI 검사를 하면 P의 성향이 100%가 나오는 나로서 당연히 출국 이틀 전까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제 짐을 싸야 하는데 마땅한 사이즈의 캐리어가 없어서 급하게 당근으로 구매했다. 그전 여행들도 다녀와서 캐리어는 못 쓰는 상태로 돌아와 버렸으니 이번에도 한 번 쓰고 버릴 생각으로 크게 따지지 않았다. 수화물을 전부 타이트하게 잡아놔서 어느 정도 공간 확장이 되는데 최대한 가벼운 것이기를 바랄 뿐.


 동네에 2만 원짜리 16인치 캐리어가 나와서 샀다. 색깔은 연한 분홍색. 귀엽네! 하고 상태 체크도 안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출국날까지 이 캐리어의 비밀번호도 몰랐다. 순간 당황해서 톡을 해볼까 하다가 당장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어림짐작으로 찍었는데 번호는 '000'이었다. 맞출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출국하기 하루 전 날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만 가득할 시기에 갑자기 영국 동행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보다 하루 먼저 출국하는 동행자분은 공항에서 숙소 체크인을 확인하려고 어플을 켰는데 우리의 숙소가 오버부킹으로 인해 취소가 되어 있다고 했다. 상황을 보니 그전에도 대행사에서 취소 건으로 전화가 여러 번 왔었는데 본인이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던 것 같다고 한다. 동행자분은 출국 당일이고 나는 당장 내일 출국인데 도착하면 갈 집이 없다는 사실에 머리가 순간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차분하게 머리가 굴러가는 법. 빠르게 다른 숙소를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숙소를 뒤졌다. 호텔보다는 그 나라의 분위기가 제일 잘 묻어나는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 편이라 나는 빠르게 에어비앤비로 검색을 했고 동행자분은 호텔을 찾으셨다. 마침 2명이서 잘 수 있고, 심지어 침대도 각자 하나를 쓸 수 있는 정말 예쁜 집이 괜찮은 가격에 나와서 좋은 매물을 찾았다며 말해줬는데 동행자분이 자기는 에어비앤비에 안 좋은 추억이 있기도 하고 남편분이 에어비앤비는 절대 반대해서 안된다고 한다. 본인이 싫은 거면 이해를 하겠는데 남편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실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법이니까.


 일단은 싫어하시니 그럼 호텔 쪽으로 찾아보자며 매물을 더 뒤졌다. 동행자분이 영국 도심에 있는 어느 호텔을 보내주셨다. 예약 어플에서는 별점이 나쁘지 않아서 수긍하려다 구글맵에 쳐보니 후기가 영 안 좋았다. 도둑이 들었다는 후기도 있고 불친절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까지 후기들이 다양했다. 심지어 비쌌는데! 그 돈이면 내가 고른 숙소의 두 배였다. 정말 깊게 고민을 하다가 서로 숙박에 관해서는 마음이 맞지 않으니 따로 자고 동행만 하자고 제안했고 상대방도 수긍했다. 그전 호텔 돈은 먼저 깔끔하게 내 몫은 돌려주셨고 우리는 영국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행이 얼마나 근사하려고 시작 전부터 이렇게 힘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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