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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Feb 02. 2024

아빠의 BMW

단돈 천만 원

아빠는 늘 남동생의 차를 탐냈다.

"너 차 안 바꾸니?"

"더 타야죠."

까만 그렌저, 남동생의 차를 탐내는 우리 아빠,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일언지하에 아빠의 의도를 모른 척했다. 물론 외벌이에 남매를 키우는 상황이라 당장 차를 바꾸긴 어려운 형편이긴 하다. 


2023년 가을, 1953년생 나의 아빠는 71세의 생신을 앞두고 있었다. 문득, 친정 가족 톡방의 알림이 울렸다.

아빠다.

"나 BMW 중고 사볼까?"

막내가 묻는다. 

"상태는 괜찮습니까?

이번엔  장남이다.

"아빠 하고 싶은 거 다 해"     

맏딸인 나는 어리둥절했다. 

'우리 아빠가 나이 70에 외제차를?' 

너무도 응원하지만 중고차라니 걱정이 앞선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캠핑차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 타고 있는 더블캠(소형 트럭)을 캠핑카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우리는 아빠의 도전적인 생각에 응원을 보내드렸다. 지긋지긋한 농사일은 이제 그만두고 좀 쉬셨으면 하는 마음도 보태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간절하셨던 것 같은데 몰랐다.


나의 어린 시절, 아빠는 오토바이 운전을 하셨다. 앞쪽 기름통에 어린 연년생 두 아들을 태우고, 아빠는 운전석에, 엄마는 뒷자리. 아빠와 엄마 그 사이에 나를 태워 가까운 시장엘 다니기도 하셨다. 요즘 시대에 동남아에 가면 거리에서 이런 가족을 만날 수 있겠지?


차가 많이 없던 그 시절, 아빠의 오토바이는 멋졌다. 그 이후 아빠는 더블캡(소형 트럭)을 타셨고, 색깔만 조금 바뀌었을 뿐 같은 차종이었다. 아빠의 차는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이 2 열이라 동네분들도 많이 태울 수 있었고, 뒷칸은 짐을 실을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 일거양득이었다.  

    

어느덧 더블캡 타고 자녀들이 사는 도시 가는 것이 싫다시던 아빠는 남동생이 차를 바꾸기를 기다리셨다. 세단을 넘겨받으실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남동생이 오래도록 바꿀 생각이 없자 아빠는 캠핑차를 사볼까 하셨다. 나이 들어 전국 여행이나 해보고 싶다고 하셨던 거다. 


그동안의 많은 생각들로부터 종지부를 찍으시나 보다. 아빠의 말씀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 했는데 진심이셨구나.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단돈 천만 원의 BMW는 괜찮을까? 정말 오래되고, 정말 많이 타서 회생 불가한 차는 아닐는지? 동네분도 중고로 외제차를 샀고, 중고차 상태의 점검 및 수리를 전문가로부터 받았단다. 전문가? 그 전문가는 믿을만한 분인가? 


"아빠, 그 차 사지 마세요. 중고는 무슨, 제가 새 차 뽑아드릴게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스물넷,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아빠는 내게 새 차를 뽑아주셨다. 시골이라 버스도 없는 곳으로 출근해야 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보려고 나섰는데 산을 넘어야 해서 쉽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에게 차 구입은 사치와 같았다. 경차를 중고로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빠는 중고차가 웬 말이냐며, 동네 부끄럽다며, 뽑아주셨던 거다. 새 차를.


나의 아빠는 참 값없이 주셨는데... 나는 그런 아빠를 십 분의 일도 따라갈 수가 없다. 통 크게 새 외제차 하나 못 뽑아드려 죄송한 마음에 중고차라는 불안이 더해졌다. 

"그분은 정말 믿을만해요?"

"그럼, 서울에서 대형 버스 기능 점검하고 고치고 그런데."

외제차는 기본 사양이 좋으니 내부에 기름칠을 해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논리다. 이 부분에 문외한이 나는 나보다 기계를 더 잘 아는 아빠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 차가 다시 성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장거리를 뛰어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차례로 서울, 전주, 부산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자녀들의 집을 방문하셨다. 차 가득 쌀자루와 무, 감, 사과를 싣고 말이다. 아빠의 차는 SUV에 가까웠고, 겉이 멀쩡했다. 물론 운전석 의자의 가죽 상태가 좋지 못하는 등 내부에는 아쉬움이 보였다. 그러나 선루프가 있다니. 이제 초등학생이 된 나의 아들은 할아버지 차가 최고로 좋단다.


나의 아빠에게 허세가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있다 해도 소박하지 아니한가. 아니, 나의 아빠는 진작에 허세를 좀 부렸어야 했다. 물론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우리는 허세랑 거리가 아주 먼, 현실 부녀긴 하다. 실용성과 효율성에 쌍수를 드는 편이다. 그래, 이제는 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안 될까?


BMW는 1인 2차를 만들었지만 일과 분리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 아빠께서 작은 꿈을 이뤄가심에 큰 박수를 보내드린다. 박수로 그치기엔 대한민국 장년의 체면이 말이 아닌 것 같아 첫 보험료를 대신 내어드렸다. 차 덕분에 아빠의 삶에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오면 더 즐거우시길.


"와, 차를 오래 타도 허리가 안 아파."

"진짜 차가 조용하고 편해 편해."

아빠와 엄마가 아이처럼 편하다고, 좋다고 자꾸 말씀하신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한테는 자식들이 사준 거라고 말했단다. 아이코. 불효자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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