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마음의 기록
나는 하면 안 되는 것을 꿈꾸는 아이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 잠에 드는 순간까지 지구가 한순간에 폭발해버리길 진심으로 바랐다. 화가 나면 내 발등 위로 무엇이든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내 손으로 완성된 그림이 눈앞에서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가끔씩 자신을 파괴시킬 용기가 없는 열몇 살의 나를 떠올린다. 장래희망에 ‘킬러’를 적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중2병의 흔적으로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이를 먹고 식견이 넓어졌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고요히 반짝거리는 한강물에 주머니 속 핸드폰을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결과는 언제나 이성의 승리였다(어쩌면 자본주의의 승리였을지도). 그 대신 나는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일상 속 작은 일탈로 잠재우곤 했다. 대책 없이 쌓아온 마음이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느껴질 때면, 눈을 질끈 감고 그곳에서 벗어나 비탈길을 뛰어 내려왔다. 그저 익숙한 골목에 자리한 서점을 찾아 빽빽하게 쌓인 책들을 눈으로 훑고 손으로 짚으며 무용한 시간을 보냈다. 대단한 모험심 같은 건 없었다. 교양 수업을 땡땡이치는, 딱 그만큼의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을 마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모든 일정이 완벽했지만 떠나는 날 아침에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버스에 오른 날도 있었다. 버스에서 버스로 몸을 옮기다 정착한 곳에서 흔하디흔한 쌀국수를 먹었다. 그건 내 여행의 기억 중 손에 꼽게 선명한 날이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 지하철에서 내려 이름 모를 식당에 들어갈 줄 아는 내가 좋았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다음 날 출근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심야 영화표를 끊는 내 모습을 사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이따금 화두에 오르는 질문이 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것. 누군가는 공부만 하면 됐던 고등학생 때로, 누군가는 죄책감 없이 놀던 대학 신입생 때로 시간 여행을 했다. 나는 그때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단호한 대답을 꺼냈다. 그리운 순간은 분명히 있지만 그 이후의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될 게 뻔한데, 그런데도 돌아간다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미래가 불분명한 삶은 현재를 앗아갔다. 언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 낯선 땅을 밟을 수 있는지, 언제쯤 누군가의 동선이 그저 사생활이 될 수 있는지, 하다못해 언제 다시 마스크를 벗은 친구의 얼굴을 보며 걸을 수 있는지조차 아는 이가 없다. 갑작스러운 약속이, 목적지 없는 산책이, 어딘지 모르는 동네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점차 내게서 멀어졌지만 어느 조각조차 손에 쥐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형체 없는 두려움이 일상을 잠식하고부터 나는 더 이상 충동적인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다.
“예전에 화가 나거나 힘들었을 때, 어떻게 했어요?”
<82년생 김지영>에서 의사가 김지영에게 던진 질문은 스크린에 부딪혀 내게 날아왔다. 그다음 장면에서 김지영은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쓴다. 키보드를 연신 두드린다. 투고한 원고가 기재된 잡지를 펼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나는 두드린 펜 끝에 잉크가 번지듯 점이 찍혀버린 과거의 어느 순간들을 떠올렸다. 정신을 차리기에 급급한 날들을 보낼 수 없기에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잠시라도 무기력을 잊기 위해 자신과 약속도 해본다. 매일 조금씩. 일주일에 한 장.
나는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태엽을 감는다. 선택할 수 있다면 기꺼이 돌아가겠다. 어느 여름밤 한강 둔치에 앉아 캔맥주를 부딪히며 하루의 끝을 장식하던 그때로 돌아가 마스크 없이 힘껏 공기를 들이마실 거다. 그리고, 결국에 나는 다시 지금의 내가 될 것이다. 그럼 또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거다. 단단히 뭉쳐버린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서, 지금의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서,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건 활자로 점철된 흩어진 마음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