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 청소

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by 호접몽

건강 서적을 읽고 실천 중인 것이 식전 양배추식과 통곡물 식사다. 올해 시작한 방법인데, 양배추와 통곡물이 기본 베이스가 잘 되어준다고 생각되니 가사부담에서 조금 해방되었다. 일단 후루룩 넘어가는 쌀밥과는 달리 저작운동을 힘써야 하는데, 식사시간이 엄청 빠르던 나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좀 더 느긋해졌고 건강염려증에서 조금은 해방되었다. 책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 중 하나다.



식사 시간에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저작운동에 힘쓴다. 원래 밥 먹을 때 그런 거 보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한 시간이 넘다 보니 그냥 걱정을 싹 잊을 만큼 웃긴 것이나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가 딱이다. 생각해보니 열심히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의 모양새다. 사람마다 맞는 식사가 다 다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잘 맞는다. 바쁘면 하기 힘들겠지만, 건강을 신경 쓰고 싶다면, 먹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주는 것도 좋겠다.



주로 밤에 각종 통곡물을 씻어서 밥하기 예약을 해놓는다. 그러면 여덟 시간 이상 불린 후에 밥솥이 알아서 밥을 지어놓는다. 예약 기능이 나의 아침을 풍요롭게 한다.



'밥' 하니까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새벽밥
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출처) 새벽밥/ 김승희 시






매일 먹는 밥인데, 매일 열어보는 밥솥인데, 거기에서 그런 모습을 보다니, 시인의 눈은 다른가보다. 나도 그 안에서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도 삶도 기다리고 무르익어야 깊은 맛을 낼 수 있겠지. 그리고 매일 밥솥을 닦는 데에 소홀하면 더러움도 무르익는다. 오랜만에 밥솥을 닦아보기로 한다. 사실 이 일은 마음먹고 어제저녁에 했다. 그래야 밤에 통곡물을 불려놓고 아침에 밥을 하라고 밥솥에게 예약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찌감치 저녁밥을 차려 먹고 내솥과 뚜껑은 물에 불려두었다. 뚜껑에 눌어붙은 밥물 자국들을 닦아냈다. 전기밥솥은 밥할 때마다 수증기가 가득 생기는 곳인데, 매일 밥을 하면서 건강에 직결된 밥솥 청소를 이렇게 소홀히 했다니…. 살짝 당황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밥솥 청소를 했다.





그동안은 밥 안치고 나서 겉면만 한번 쓱 닦고 말았고, 그것도 깔끔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밥솥 속을 들여다보니 많이 미안했다. 그동안 말도 못 하고 나의 손길만을 기다렸겠구나. 물티슈와 면봉까지 동원해서 오랜만에 대대적인 밥솥 청소를 해주었다. 특히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동안 잊고 있던 물받이도 보였다. 역시 물에 담가 두었다가 주방세제를 이용해서 닦아주었다.




살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세제도 다양하게 구비해서 청소를 해주지만 나는 아직 초보다. 있는 세제 가지고도 일단은 하는 데까지 해볼 수 있다. 세제가 없어서 청소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힘으로, 천천히 해내기로 한다. 밥솥을 깨끗하게 해주고 나니 밥솥이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듯 빛이 난다. 그래서 그런가. 아침밥을 먹을 때 밥맛이 더 좋아졌나 보다. 건강에 직결된 것은 조금만 더 신경 쓰기로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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