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휴직기간은 아빠의 산후우울증 극복기간이었나.
그 간 와이프의 복직으로 글을 쓸 시간이 나질 않았다. 와이프가 복직하는 것과 글 쓰는 시간이 무슨 상관? 내겐 큰 의미가 있다.
와이프와 서로의 감정을 갉아가며 한바탕 하고 나면 자연스레 뒤돌아 앉아 혼자 핸드폰을 쳐다보는 시간이 생긴다. 브런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와이프 몰래 일기 아닌 일기를 쓰기 위한 수단이었고, 내 불만을 비롯한 온갖 잡다한 감정들의 분출구였다.(차마 발행하지 못한 작가 서랍 속의 글들이 많다.)
그런 글 쓰는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은 혼자 핸드폰을 쳐다보는 시간이 사라졌고, 다시 말해 와이프와 서로 감정을 갉아먹을 일도 없어졌다는 의미다. 와이프가 복직하기만을 기다리긴 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회사에서 할 말은 하면서 MZ세대 흉내를 내서인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와이프의 화가 사라졌다. 그동안 육아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나에게로 향했던 것이 맞는 듯하다. 만세. 이제 나도 와이프가 다시 사랑스러워 보인다. 아기만 바라보던 내 눈빛이 와이프에게도 향해지는 것을 나 스스로가 느끼며 반성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남자인 나도 산후우울증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정신의학신문에서 "산후우울증 이야기 아빠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 날 관찰하고 써 내려간 글 같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공감되는 문구가 많았고 그 문구를 보며 나와 같은 처지의 아빠 혹은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일 끝나고 퇴근하는 길, 즐거운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오늘은 어떤 이유로 아내와 다투게 될까.
특히,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아내는 더 나한테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산후우울증은 엄마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아니라고 한다. 아빠도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다만 원인이 다르다. 엄마는 큰일을 겪은 정신적인 충격과 변화, 신체적으로는 호르몬의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증상이라면, 아빠들은 단순하다. 그런 엄마들을 보며 느끼는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한국 문화적 특성상 아빠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속 시원하게 말 못 하고 참는 경우가 많아, 심리적인 압박감을 더욱 느낀다고 한다.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남자들의 산후우울증은 이해심 부족인 건가 싶다. 아직도 너무나 당연하게 휴직과 육아에 대하여 아빠보다 엄마 역할 인식이 크다. 그런 인식 속에서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하다 보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뿐인데. 당연히 남편이 야근으로 퇴근이 늦어지면 짜증이 나는 게 당연했나 싶다.
내가 속 좁은 남편인 탓에 혼자 감정 상해 있었던 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서랍 속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글들은 그대로 묻히길. 그리고 앞으로 밝은 우리 가족의 모습만 그려지길 바라며 오늘도 내 탓으로 감정을 추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