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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 Dec 02. 2022

난 아내와 있으면 답답하다

단지 과민한 내 지나친 트라우마(trauma)이길.


나를 밝히지 않고 온전히 내 입장에서만 내 고민과 불평불만들을 써 내려가다 보니 문득 떠오른다. 친한 친구, 동료들에게 술 한잔 주고받으며 털어놓은 그 고민들은 얼마나 날 것의 진심일까.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식의 아버지로서 내뱉은 그 고민의 크기가 과연 말하는 그뿐인 걸까. 아마 그 대화에서 벗어던진 수백 겹의 "착한 사람" 가면이 정말 자기 최후의 가면이 맞았을지는 본인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라 확신한다.


2019년 마지막 달, 결혼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 예쁜 아내와 정말 꿈같은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남들이 표현하는 달콤한 신혼생활이 시작되기도 했다. 다만, 너무 빠르게 행운이 찾아왔다. 결혼하고 약 5개월째 나와 아내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물론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생긴 건 계획된 것이었고 계획대로 되어준 것에 대한 감사도 있었다.(이렇게 한방에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연애할 때는 몰랐던 아내의 모습을 이해하고 천천히 맞춰갈 여유도 없이 부쩍 예민해진 아내의 모습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호르몬 변화가 없었던 내 입장에서 그 모습들이 현재 너무나도 강한 트라우마로 남겨졌다.(마치 술 한 모금 하지 않은 맨 정신의 남자가, 정작 본인은 술에 취해 막 나갔던 전 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친구를 다음 날 다시 맞이한 상황과 비슷할지도.)


누군가는 얘기한다. 아내는 상관도 없는 것을 네가 너무 스스로 과하게 눈치 보고 지레짐작으로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건 아니냐고. 전혀 아니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예능에서처럼 관찰 카메라로 대화와 행동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래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최근의 사소한 예를 들어본다.


아내, 나, 만 23개월 아이까지 셋이 모두 사이좋게 같은 날 코로나 확진. 일주일간의 병가를 얻으며 셋이 같은 공간에서 바깥공기로부터 격리된 지 만 3일이 지났다.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고열과 더불어 근육통, 인후통에 시달리는 아빠 엄마는 3일째가 힘듦의 최고조였다. 가장 최악은 내가 아파도 아이의 케어는 24시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고열 때문에 새벽에도 주기적으로 아이의 열을 체크해주어야 한다. 1차로는 물수건, 2차로는 해열제, 그래도 안되면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갈 준비라도 해야 하므로.)

당연히 힘들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겪는 아픔이, 어른은 아픔에 수면까지 방해받는 고통이. 어른이고 아이고 다 같이 힘든 시간이다. 애가 안아달라고 찡찡대고 그렇게 두어 시간을 안은 채로 시달리다 보면 누구든 진이 빠지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 와중에 아내가 애 앞에서 내뱉던 한숨이 몇 번이었는지는 10번까지 세고 중간에 포기했다.(그래도 난 남편이고 아빠이며, 당신은 내 아내이고 엄마였으리라. 우린 좀 더 어른답게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숨 좀...”
“네가 안고 있어 볼래?”

실수했다.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그나마 ‘난 퇴근해서 너 없을 때 애 한 손으로 안은 채로 집 청소도 해. 넌 퇴근해서 나 없을 때 애랑 있으면 집안일 뭐 하나라도 하는 게 있어?’라는 말은 내 생각으로만 남도록 내 이성이 미친 듯이 외쳐대 줬다.(아이가 찡찡댈 때 10번 중 9번은 아빠인 날 찾아와 안아달라고 한다.) 게다가 애초에 집안일을 대하는 시각이 우리 부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저 말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면 분명 난 “누가 하래? 내가 시켰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 확신한다.(난 보이는 대로 치우는 편, 아내는 의도적인 게 아니라 인지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안? 못? 보는 편)


이러한 (임신기간 중이었다면) 당연했을 사소한 공격적 대화들을 미리 생각하고 그 싸움으로 인한 감정 소모를 방어하고자 하는 것이 내 트라우마다.


“남편분한테 문제가 있네요. 쭉 지켜보니 그냥 와이프랑 상관없는 본인만의 과민 행동들이세요.“


종종 결혼지옥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 자리에 있고 오은영 박사님이 내게 이 말을 해주시는 장면을 상상한다. 전문가가 네가 문제고 네가 고치면 된다는 말만 해준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다. “착한 가면”을 잠시 벗어놓고 주위에 털어놓는다고 해결될 트라우마는 아닌 듯하고 전문가에게는 정말 날 것의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진짜 전문가를 찾아갈 용기가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내와 있으면 여러모로 답답하다. 임신기간 중에 화가 가득 차 있는 아내의 모습이 상상되고 트라우마가 밀려올 때면, 주절주절 수다스러웠을 평소 나의 모습을 저절로 감추게 된다. 이것이 아내에 대한 내 트라우마이자 겁쟁이인 나의 현재다. 혹시나 해서 설명하자면 내 정신적 불안과는 별개로 우리 부부는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지만 평범하게 화목하고 오히려 남들보다 여행도 자주 다니는 커플이다. 다만, 그래서, 난 더 나를 잃어가는 기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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