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예방 백신 얀센 주사를 맞고 집에 일찍 왔다.
주사를 맞은 어깨만 조금 욱신욱신할 뿐 몸이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주사를 오전에 맞는 통에 회사도 일찍 끝내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여름방학으로 유치원에 가지 않는 첫째와 아직 어려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둘째, 그리고 아내와 장모님께서 계셨다.
" 주사는 잘 맞고 왔어? 어때? "
" 괜찮던데? "
" 아 진짜? 그럼... "
아내는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으로 정리한 육아 리스트, 남편이 해야될 육아 리스트를 입으로 꺼냈다.
" 오빠, 일단 우유 좀 사다줘. 그리고 오면서 세탁소 좀 들려주고, 그리고.. "
차분한 말투로 꺼낸 육아 노동 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았다.
" 있잖아.. 나 주사 맞았는데? "
" 그래.. 좀 쉬게해라. 기다렸다는 듯이 시키니? "
옆에서 둘째 아이를 안고 있는 장모님께서 너무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지만, 그녀는.. 아이들의 엄마는 자기 할말을 계속했다.
" 오빠, 그리고 엄마 요즘에 허리 아프시데 오늘이라도 쉬게 해드리자. 첫째랑 같이 나갔다 올 수 있지? "
장모님께서 괜찮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첫째를 데리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장모님은 필히 육아를 해야되는 분이 아니시기에 매번 죄송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째와 나간 육아 노동은 그날따라 몹시 길고 힘들었다. 날씨도 계속 찌는 통에 땀을 질질 나지, 아이도 덥다며 안아달라 엎어달라 보챘고 장바구니 들라 세탁소 옷 짐을 들라 정신 없었다.
잠깐 나갔다 오려고 했으나 어느새 집을 나온지 4시간이 넘었다. 그 사이에 아이와 간식도 먹고 달리기 시합도 했으며 마트에서 땀도 식히고, 정말 피곤했다.
아이와 함께 땀 범벅인채로 집에 들어왔다. 한숨을 푹 쉬며 쇼파에 앉을찰라,
" 오빠, 땀 냄새난다. 얼른 씻어. "
" 아 응응.. "
등 떠밀려 들어간 화장실. 그래도 따듯한 물을 정수리에 틀고 눈을 감고 있자니 기분이 나릇나릇했다.
" 첫째 들어가요. "
빼꼼히 열려진 화장실 문틈 사이로 장난끼스런 표정의 첫째가 들어온다.
" 아빠, 물총 싸움하자. "
" 아, 그래 알았어. "
정수리에 틀어져있던 샤워기는 어느새 욕조에 대놨고 좁은 변기와 욕조사이로 물총싸움이 일어났다.
" 둘째, 들어가요. 똥 쌌어요. "
아이 양팔 겨드랑이에 아내 팔이 끼워진채 문틈사이로 똥냄새와 함께 들어왔다.
씻고 물총싸움도 꾀나 한거 같은데 안나가려고 한다. 그렇게 한시간. 아이를 하나씩 내보내고 화장실을 정리하며 나왔다.
부랴부랴 애들 밥챙기랴 놀아주랴 칫솔질 하랴.. 어느새 재울 시간이 됐다.
몸이 피로에 빠진채 나긋나긋. 백신 때문인지 몰빵한 육아 덕분인지 이유는 헷갈린다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 체력이 진짜 한계다.
" 아빠랑 잘래... "
첫째와 침실로 가는건.. 책 지옥에 가는 것과 같다. 10권을 다 읽고도 화장실간다며, 물마신다며 요리조리 빠져나갈궁리만 하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다.
" 자기야. 있잖아. 나 오늘 주사 맞기도 했고 목욕 하면 안되는데 한시간이나 했고.. 재우는 건 너무한 처사야.. "
" 첫째는 아무리 내가 재워도 안잔다잖아. 어쩔수 없어. "
" 와.. 알았어. 근데 진짜 나도 내가 이렇게나 체력이 좋은지 몰랐네. 내 잠재적인 능력을 오늘에서야 알았어. 내 한계치를 극복해 나가는 중이야. 고마워. "
아내는 내 농담에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더 마냥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왜냐.. 결국 첫째랑 방에 들어가는건 나니까...
그렇게 백신을 맞은 날. 첫째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기절해 버렸고 다음날 아침 몸이 좀 무거웠다. 몸살끼가 살짝 돈다고 해야되나? 이게 육아의 후유증인지 백신의 후유증인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아내는 내 한계를 계속 극복하게 해주는
내 아내는 바로 나에게 있어 육아 멘토이나 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