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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Mar 27. 2024

둘아이아빠

지구의 날

  첫째 아이가 오늘 분주하다.

  학교에서 지구의 날에 대해서 배웠다고 했다. 지구의 날에는 지구를 지켜주기위해 저녁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지구에 있는 모든 전기를 꺼야 한단다.

  저녁 식사를 한 6시 30분. 2시간 남는 시간동안 남은 숙제도 하고, 씻어야 하고, 간식도 먹어야 하기에 매우 바쁘게 움직인다. 

  처음에는 굳이 할 필요가 있으나 싶었으나, 첫째가 너무 재밌게 움직이는 바람에 같이 동조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스쳐가는 찰나의 생각. 아 불을 끄면 오늘 육아는 빨리 재우면서 끝나겠구나. 적극 동참했다. 


  8시 29분. 지구의 날을 지키기 위한 1분전. 

  하루 일정을 모두 정리하고 오랜만에 가족 네명이 함께 침대에 누웠다. 

  " 너무 쫍아 불편해. "

  " 서로 장난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괜찮아. "

  이제 불을 껐다. 

  조용.. 그리고 잠시 침묵... 1~2분이 지났을까? 

  " 나 너무 심심해. 책이라도 읽자."

  첫째는 자기가 한 약속이 얼마나 쉽지 않은 약속인지 이제 이해한 듯하다. 

  " 안돼. 책 읽으려면 불을 켜야 되자나."

  " 그럼 나 안할래."

  첫째가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불을 키려고 하자 나는 냅다 첫째를 꼬옥 잡아 다시 침대에 눕혔다. 이놈 빠른 육아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어딜 도망가려고.. 

  " 안돼. 약속한건 지켜야지. 한번 다짐했으면 지켜야 하는거야."

  " 엄마~!. 아빠가 못움직이게 해. 그리고 나 싫어 불킬거야. "

  아내도 빠른 육아 퇴근을 바랬는지, 오늘만큼은 내 편이다.

  " 안돼. 지켜야지. 엄마는 잔다. 알아서 다들 자자. "

  첫째가 꿈틀대니, 둘째도 계속 꿈틀대며 벗어나려고 한다. 절대 안된다. 꾀를 내자. 그래 문제를 만들자.

  " 10번의 문제를 모두 풀면 풀어줄께. 그럼 불을 켜도 돼."

  " 10번 너무 많아. 엄마~! 엄마~! "

  둘째가 형을 도와 형을 꼭 잡고 있는 내 손을 풀려고 하자 나는 더 꽉 쥔다. 아내는 자는 척 아무 소리 안낸다. 혼자 킥킥 거리고 있다.

  " 알았어. 얼른 내. 그리고 진짜 풀어줘. "

  " 그래.. 그럼 첫번째 문제 나갑니다."

  사실 문제를 생각해 낸 것도 없었고 목적만 있는 시간 떼우기다 보니,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어려운 문제를 내야 1시간을 쏟으니.. 아 그런데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그럼 길게 끄는 문제로 가자. ok.

  " 초등학교 처음 갔는데, 1교시 땐 어떤 수업을 했고, 어떤 감정을 갖았고, 누구랑 놀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해줘. "

  " 아빠~!! 너무 길잖아. " 

  " 아닌 안풀어줄거야. "

  " 알았어. 그럼 꼭 풀어주기다. 1교시 수업은 교실 안내하면서 돌아다녔어. 누구랑 누구랑 친해졌고.... "

  첫째 아이가 어느정도 답을 해나갈때면 자연스레 문제를 더 붙였다.

  " 아 ~ 그래? 그럼 반 전체 친구랑 친해진건 아니네? 누구 남은거야? "

  " 그럼 2번문제야? "

  " 아니, 아직 1번이 안 끝났어. " 

  그렇게 시작된 1번 문제. 그리고 2번, 3번, 4번. 얘기를 계속 이끌어 갔고, 너무 문제가 길어 짜증을 부릴 때면, 

  " 이제 2번이야. 몇번 문제 안남았어. "

  얘기의 끝을 계속 붙잡았고, 어르고 달랬다. 9번 문제에 다다를 때쯤 아이들이 물었다. 

  " 몇 분 남았어? 근데 막상 해보니깐 재밌다. 다음 문제는 뭐야? "


  빠른 육아 퇴근을 위해 시작된 지구의 날. 지구 지키는 날이었는데, 요새 일이 바빠 정신없는 통에 내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컸나 싶었다. 

 '일주일에 이렇게 딱 1시간씩만 투자하면 아들과 아빠 사이가 멀어질 일이 없겠구나. 친구같은 아빠가 꿈이었고 그걸 이루려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일주일에 1시간이면 충분한 거였어.' 


  9시 30분은 금새 되었고, 아이들의 잠을 재우지 못해 빠른 육아퇴직은 하지 못했다. 다만 둘째와 첫째가 거실 불을 키면서.. 

 " 그리고 우리가 오늘 지구 잘 지켜줬어. 그리고 생각보다 재밌었어. "

 " 아빠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 

  가슴이 뭉클했다. 옆에서 진짜 잠을 청하려던 아내도 듣고 있던 것만으로 뿌듯했나 보다.

  " 괜찮은 시간이었지? 오빠? 생각보다 좋네 이런시간."

  " 그치? 꼭 무언가를 하진 않아도 누워 있어도 재밌네. "


  " 근데 그거 알아? 오늘 지구의 날 아니다 !? "

  엥, 뭐지... 그래도.. 즐거운 가족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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