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에서 소외당할 용기

요즘 시간이 많다 보니 꽤 오래전 일들까지 반추해보곤 하는데,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끙끙거리며 살았다는 거다. 학교에선 친구들을, 직장에선 동료들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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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가운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저지르는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흔한 방법은 누군가를 특정해 소외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침에 만나자마자 밤새 고인 험담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서로 눈만 마주쳤다 하면 한숨 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으며,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적개심과 전투심에 불타올라 아침보다 더 생기 있는 얼굴이 되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그 무리 가운데 나는 꽤나 적극적이었다. 소외당하는 것이 누구보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 섞인 단어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으며 부풀리기도, 비틀기도 한 이야기들이 험담의 불씨를 살리면 불구경하는 애처럼 은근 신이 나기도 했다. 모두의 적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이 무리 안에서는 소외당하거나 욕먹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게 생겼던 거다.


허나, 이 기괴한 일상 뒤에 밀려오는 피로감과 자괴감은 만만치 않은 법. 험담에 한창 열을 올리다가 잠깐씩 찾아오는 침묵에는 공허함이 뒤따랐고, 언젠가 이 무리의 적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아찔하기도 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끌어들이며 험담을 하는 걸 들을 때면 씁쓸함에 괴로웠다. 이런 조직은 끈끈한 팀워크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서로 눈치 보는 공범들에 불과하다.


지금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무리의 보폭에 내 걸음을 맞추느라 애쓰던 그 시간들이 참 덧없게 느껴진다. 영원한 편도, 영원도 적도 없다. 아닌 건 아닌 거다.


만약 또다시 어느 조직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조직이 '공동의 대상'을 물어뜯고 있다면 과감히 무리에서 소외당할 용기를 발휘할 테다. 그 고루하고 유치한 방법 말고도 무리 중 하나로 인정받는 방법은 있을 테니까.


나이가 들면서 '평범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을 고민한다. 특별할 것 같았던 인생은 매일이 그저 그렇듯 평범한 것이고, 그 인생을 지루해하지 않고 익숙하고 능란하게 살아내는 것이 잘 사는 거라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