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상사의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당연히 진로다. 40대 중반에 진로라는 단어가 어울리진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라는 단어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아서 욕심을 부려본다. 어떤 직장, 어떤 직업을 구해야 할까 보다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싶다.


나는 다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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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쯤인가. 회사 상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적 있다. 그땐 그걸 그렇게 부르는지도 몰랐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실수투성이”에 “조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천덕꾸러기”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그의 폭언에 종일 시달리다 퇴근하면 명사수의 과녁이 된 것마냥 온몸이 너덜너덜 욱신거렸다. 아침에 눈 뜨면 공포감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었지만 내가 모자라니까 더 잘하면 된다 마음을 다잡으며 출근했다.


생각보다 말은 무섭고 집요했고, 어느샌가 나는 곧잘 하던 것도 쉽게 그르치고 벌벌 떠는 바보 천치가 되어 있었다. 분명 경력직으로 이직했던 곳이었고 나름 일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라고 하니 정말 그런 사람이 됐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어느 날. “똥 씹은 표정 하지 말라”는 말에 웃었더니 “뭐가 좋아 실실 웃냐”며 윽박지르는 그의 앞에서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나를 보며 겨우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하던 날. 배웅한답시며 회사 문밖까지 쫓아 나온 그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봤지만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눈물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였다.

중증이었다.


퇴사 후에도 나는 끝없이 자책했고 깜냥도 안 되는 게 폐만 끼치고 나왔다는 생각에 괴로웠으나, 그가 떠난 회사에서 재입사를 제안하는 연락을 받고 난 후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6년 만이었다.


시간이 더 흘렀고, 지금 그 기억은 호되게 앓고 난 뒤 느껴지는 나른함과 무기력함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그때 내가 좀 더 야무지고 단단했다면 달랐을까? 장담할 수 없다. 이후에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상사를 맞게 될 때마다 잔뜩 긴장이 됐던 건 사실이다. 새로운 직장보다 새로운 일을 찾고 싶은 가장 큰 이유다.


방금 '가스라이팅'을 검색해봤더니 정식 학술용어가 아니라서 '심리적 지배'라고 부르도록 권장한다고 한다. 훨씬 더 직관적으로 잘 와닿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잠식당하지 않도록 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일.

있겠지?

아직 늦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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