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사주를 본 적이 있다. '평생 만족을 모를 팔자'라고 했다. 그냥 재미로 봤다고는 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팔자'가 '운명'이라는 고급진 단어로 내 안에 가부좌를 틀자, 이력서는 빠르게 지저분해졌다.
방송작가, 공시생, 온라인 쇼핑몰 대표, 분식집 사장, 병원 홍보팀원, 편의점 점주, 기관 홈페이지 관리, 계약직 공무원...
2003년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후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총 12개의 '직업'을 전전했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5년.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나를 만족시켜주지 않았다. 처음엔 구미가 당겼으나 금세 일상이 되었고, 갈수록 지루하고 괴로워졌으며, 결국 '이게 맞는 건가? 최선인 건가?' 의심을 안기며 끝을 맺었다.
초반엔 대수롭지 않았다. 젊었을 때 이것저것 경험해 봐야 정말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여유 같은 게 있었던 거다. 운 좋게 이직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식자리에서였다. 면접에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직장상사가 술잔을 채워주며 한마디 했다.
"이력서가 너무 지저분해서 깜짝 놀랐어. 사회생활 길게 하려면 경력관리 좀 해야겠던데?"
그나마 경력을 추려서 기재한 내 이력서가 '지저분'하게 느껴질 정도라니. 직구에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왜 나는 한 곳에서 진득하게 일하지 못하는가. 공통점이라곤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 맥락 없는 이력들은 이제 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도대체 일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그즈음부터 시작된 고민들은 지금까지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40대 중반에야 이런 고민을 하도록 앞뒤 없이 살았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뿐이다.
올여름 퇴사를 하면서 이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엔 쉽게 다음 일을 결정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제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늦었다 싶기도 하지만, 더 늦지 않아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지도를 펼쳐놓고 20년간 지나왔던 궤적들을 조용히 들여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