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지름길
1만 2천 원짜리 와인과 4만 8천 원짜리 와인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망설인다. 너무 싼 것은 품질이 의심스럽고, 너무 비싼 것은 부담스럽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2만 5천 원짜리 와인. 적당하다. 합리적인 선택 같다. 당신은 그것을 집어 든다.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은가? 여기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
그 와인 가게 주인이 정말로 팔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2만 5천 원짜리였다. 1만 2천 원짜리는 "이것보다는 좋은 걸 사야지"라는 생각을 유도하기 위해 진열된 미끼였고, 4만 8천 원짜리는 중간 가격이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천장 역할을 했다. 당신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 그 선택은 설계된 것이다.
이것이 휴리스틱의 함정이다.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heuriskein'에서 왔다. '발견하다'라는 뜻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뛰어나오며 외쳤다는 "유레카(Eureka)!"도 같은 어원이다. 심리학에서 휴리스틱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여 빠르게 판단하는 정신적 지름길을 의미한다.
왜 뇌는 지름길이 필요할까? 연산량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 아침에 눈을 떠서 알람을 끌지 말지, 이불을 걷을지 말지, 화장실을 먼저 갈지 물을 먼저 마실지. 이 모든 것이 결정이다. 만약 매번 모든 선택지를 분석하고, 장단점을 따지고, 최적의 해를 계산해야 한다면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정신적으로 소진될 것이다.
그래서 뇌는 경험칙을 사용한다. "지난번에 이렇게 했더니 괜찮았으니까 이번에도 이렇게 하자." "다른 사람들이 저쪽으로 가니까 나도 저쪽으로 가자." "비싼 것이 좋은 것이겠지." 이런 단순한 규칙들이 휴리스틱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사바나에서 풀숲이 바스락거릴 때, 그것이 바람인지 사자인지 꼼꼼히 분석하는 개체는 살아남지 못했다. "일단 도망가고 보자"는 휴리스틱을 가진 개체만이 유전자를 남겼다. 오류 비용의 비대칭성이 작동한 것이다. 바람을 사자로 착각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 뿐이지만, 사자를 바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죽음이다.
휴리스틱이 체계적인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두 명의 이스라엘 심리학자였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 1970년대 이 둘의 공동 연구는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뒤흔들었고,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트버스키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났기에 함께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전설적이다. 1969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카너먼은 트버스키를 세미나에 초청했다. 트버스키는 인간이 직관적으로 통계를 잘 이해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카너먼은 동의하지 않았다. 세미나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점심을 함께 했고, 그 점심은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후 그들은 매일 만나 산책하며 대화했고, 그 대화에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단순하지만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판단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오류를 범한다. 무작위적 실수가 아니라 체계적인 편향이다. 그리고 이 편향은 교육 수준이나 지능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통계학 교수도, 의사도, 판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너먼은 그의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뇌의 작동 방식을 두 가지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직관적이며, 자동적이다. 노력이 거의 들지 않는다. 2+2가 4라는 것을 아는 것, 화난 얼굴을 보고 화가 났다는 것을 아는 것, 모국어 문장을 이해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시스템 1의 영역이다. 의식적 통제 없이 저절로 작동한다.
시스템 2는 느리고, 분석적이며, 의식적 노력을 요구한다. 17×24를 암산하는 것, 복잡한 논증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 세금 신고서를 작성하는 것, 이런 것들이 시스템 2의 영역이다.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문제는 시스템 2가 게으르다는 것이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려는 경향이 있고, 시스템 2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그래서 뇌는 가능한 한 시스템 1에 의존하려 한다. 시스템 1이 답을 제시하면 시스템 2는 별다른 검토 없이 그것을 승인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휴리스틱의 함정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비행기 사고와 자동차 사고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사고라고 답한다. 실제로 비행 공포증은 매우 흔하지만, 운전 공포증은 드물다. 그러나 통계는 정반대를 말한다. 미국에서 1년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은 약 4만 명이다. 반면 미국 내 상업 정기 항공편의 탑승자 사망은 대부분의 해에 0명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연간 평균 100~200명 수준이다. 마일당, 시간당, 어떤 기준으로 계산해도 비행기가 압도적으로 안전하다.
왜 우리는 거꾸로 느낄까? 가용성 휴리스틱 때문이다. 뇌는 어떤 사건의 발생 확률을 추정할 때, 관련 사례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비행기 사고는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이미지, 울부짖는 유가족의 모습이 생생하게 각인된다. 반면 자동차 사고는 너무 흔해서 지역 뉴스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다. 쉽게 떠오르는 것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고 뇌는 착각한다.
이것을 아는 조작자들은 특정 사건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킨다. 이민자 범죄를 매일 보도하면 실제 범죄율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이민자가 위험하다고 느끼게 된다. 테러 공격을 끊임없이 다루면 테러로 죽을 확률이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사실은 잊힌다. 뇌는 자주 보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피험자들에게 돌림판을 돌리게 했다. 돌림판은 10 또는 65에서 멈추도록 조작되어 있었다. 그런 다음 질문했다. "아프리카 국가 중 UN 가입국의 비율이 방금 나온 숫자보다 높습니까, 낮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몇 퍼센트라고 생각합니까?"
돌림판에서 10이 나온 집단은 평균 25%라고 답했다. 65가 나온 집단은 평균 45%라고 답했다. 완전히 무작위적인, UN 가입률과 아무 관련 없는 숫자가 판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것이 앵커링 효과다. 처음 접한 숫자가 닻(anchor)처럼 작용하여 이후의 판단을 그 근처에 묶어둔다.
앵커링은 협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 먼저 숫자를 제시하는 쪽이 유리하다. 부동산 중개인이 "이 집은 8억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 8억이 기준점이 된다. 실제 가치가 6억이든 10억이든, 협상은 8억 근처에서 이루어진다. 세일 가격표에 "정가 10만 원, 할인가 5만 원"이라고 적혀 있으면 5만 원이 싸게 느껴진다. 그 물건의 실제 가치가 3만 원이어도.
가장 무서운 것은 앵커링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아도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도 예외가 아니다. 부동산 전문가에게 집값을 평가하게 하면서 높은 호가를 보여준 집단과 낮은 호가를 보여준 집단의 평가액이 달랐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호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확신했지만,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린다는 31세 독신 여성으로, 솔직하고 매우 똑똑하다. 철학을 전공했다. 학생 시절 차별과 사회 정의 문제에 깊이 관여했으며,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다. 다음 중 무엇이 더 가능성이 높을까? (A) 린다는 은행원이다. (B) 린다는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하는 은행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B)를 선택한다. 직관적으로 린다의 프로필이 페미니스트와 더 잘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 오류다. "페미니스트 은행원"은 "은행원"의 부분집합이다. 부분집합이 전체집합보다 확률이 높을 수는 없다. 은행원인 린다 중 일부만이 페미니스트일 것이므로, (A)가 항상 (B)보다 확률이 높거나 같다.
이것이 대표성 휴리스틱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 특정 범주의 전형적인 특성을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고 확률을 판단한다. 린다의 묘사가 "페미니스트"의 고정관념과 유사하기 때문에, 통계적 논리를 무시하고 그쪽으로 판단이 기운다.
사기꾼들은 이 휴리스틱을 적극 활용한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건강식품을 권하면 더 신뢰가 간다. 고급 양복을 입은 사람이 투자 상품을 권유하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들이 실제로 의사인지, 실제로 부자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의 뇌는 외양과 실체를 구분하는 데 서툴다.
1960년대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간단한 실험을 고안했다. 피험자들에게 "2, 4, 6"이라는 숫자 세 개를 보여주고, 이 숫자들을 생성한 규칙을 찾아보라고 했다. 피험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규칙을 테스트하기 위해 세 개의 숫자를 제시할 수 있고, 실험자는 그것이 규칙에 맞는지 여부만 알려준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짝수의 증가" 또는 "2씩 증가하는 수열"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8, 10, 12나 14, 16, 18 같은 숫자를 테스트했다. 실험자가 "예, 맞습니다"라고 하면 확신을 갖고 답을 제출했다. 그러나 대부분 틀렸다. 실제 규칙은 단순히 "오름차순"이었다. 1, 2, 3도 맞고, 5, 100, 1000도 맞았다.
피험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는 사례만 찾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 예를 들어 1, 3, 5 같은 홀수 수열이나 10, 5, 1 같은 내림차순을 테스트하지 않았다. 이것이 확증 편향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존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를 찾고,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을 극대화한다. 당신이 클릭하고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와 유사한 콘텐츠가 더 많이 노출된다. 당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끊임없이 공급된다. 다른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게 되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는 확증 편향의 기술적 증폭이다.
마케터, 정치인, 사기꾼. 이들은 휴리스틱의 작동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 어쩌면 심리학자들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른다.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실전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의 가격표를 보라. 9,900원은 10,000원과 100원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는 만 원대와 구천 원대의 차이다. 왼쪽 자릿수 효과(left-digit effect)라 불리는 이 현상은 뇌가 숫자를 왼쪽부터 처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9,900원을 보는 순간 시스템 1은 "9천 원대"라고 인식하고, 시스템 2는 굳이 정정하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의 "오늘만 이 가격" 문구는 희소성 휴리스틱을 자극한다. 희귀한 것이 가치 있다는 경험칙이 작동하여, 충분히 고민할 시간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1,247명이 이 상품을 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는 사회적 증거 휴리스틱을 자극한다. 많은 사람이 관심 갖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경험칙.
정치 영역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특정 범죄를 반복 보도하여 가용성 휴리스틱을 조작하고, 복잡한 정책을 단순한 슬로건으로 대체하여 시스템 1에 호소한다. "세금을 낮추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직관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제 경제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유권자의 시스템 2는 선거 시즌에 작동하기엔 너무 피곤하다.
휴리스틱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뇌의 작동 방식 자체이며, 대부분의 경우 유용하다. 문제는 언제 그것이 함정이 되는지를 아는 것이다.
첫 번째 방어선은 인식이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지금 나는 빠르게 판단하고 있는가, 천천히 분석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라. 시스템 1이 지배하고 있다면, 의식적으로 시스템 2를 깨워야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시스템 1은 자신이 옳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 장치가 필요하다.
두 번째 방어선은 시간이다. 즉각적인 결정을 요구하는 상황을 경계하라. "지금 당장 결정하셔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같은 압박은 시스템 2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하루, 이틀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 급하지 않으면 급하게 결정하지 마라.
세 번째 방어선은 데이터다. 직관을 숫자로 검증하라. 비행기가 무섭다면 실제 사고 통계를 찾아보라. 투자 상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과거 수익률을 확인하라. 정치인의 주장이 그럴듯하다면 팩트체크 사이트를 방문하라. 물론 통계도 조작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직관만 믿는 것보다는 낫다.
네 번째 방어선은 반대 관점의 의도적 탐색이다. 확증 편향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읽어라. 구매하려는 제품의 부정적 리뷰를 찾아보라. 불편하지만 필요하다. 자신의 믿음이 옳다면 반박을 견딜 수 있을 것이고, 틀렸다면 바로잡을 기회가 된다.
2만 5천 원짜리 와인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이 나쁜 선택이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와인 맛이 좋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선택이 정말로 당신의 것이었는지다. 당신이 원해서 고른 것인지, 누군가의 설계대로 골라진 것인지.
휴리스틱은 뇌의 효율성을 위한 도구다. 그것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려는 의도는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슈퍼마켓의 9,900원 가격표는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원리가 당신의 투표, 건강 결정, 인생의 중대한 선택에 적용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카너먼은 말년에 자신의 연구가 인간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담고 있다는 비판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인간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합리성이 기본 설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성은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장에서는 뇌의 또 다른 취약점을 탐구한다. 쾌락과 동기의 중추, 도파민 시스템이 어떻게 해킹당하는지. 와인 선반 앞의 선택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중독적인 조작의 세계로 들어간다.